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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80 (히 12:1-3)

2023.08.24 08:16

hc 조회 수:269

<묵상, 설교 한 토막>

 

무엇을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신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 가운데 결국 우리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보는 대상이 올바르지 않으면 인생도 그릇된 길로 행하기 마련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그릇된 것을 바라보고 그 대상을 선택하게 되면 결국 인생에서 그 고통스런 대가를 치르기 마련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인생의 시간들은 어찌할 수 없다 치더라도 남은 인생 속에서는 내가 무엇을 주목하여 바라보며 살아낼 것인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라고 한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주요에 해당되는 원뜻은시작자’, ‘근원자’, ‘창조자라는 뜻입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완전한 자’, 또는성취자라는 뜻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이요 끝이며 믿음을 주신 자이시며 그 믿음을 완성시켜 나아가실 자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갖게 되는 일과 그 믿음이 성장하게 되는 일은 결코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나름 예수를 나는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일에 집중하며 그리스도만을 견고하게 바라보는 그 모든 시간들을 통해서 결국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 믿음은 점점 성숙되어 완전해지게 됨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바라봄은 시간이 나고 생각이 날 때 가끔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민수기 21장에 보면 출애굽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하자 하나님께서 불 뱀들을 백성들에게 보내어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고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불 뱀들이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 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 달라고 명하셨고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놋으로 불 뱀의 모양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 달고 불 뱀에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도록 명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 놋 뱀을 쳐다본 자들은 모두 살게 되었다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기 위해서 절박함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믿음을 가지고 놋 뱀을 바라보듯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마음은 바로 그것이어야 만합니다. 그러나 저는 단언하건데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 분이나 그 믿음이 더욱 성장하기를 원하는 분 가운데 그렇게 절박하고 간절하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찾는 분을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절박하지도 간절하지도 않으며 의지는 연약하기 이를 데 없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 자신을 바라보거나 자기의 의지를 믿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많은 경우들을 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단지 종교적인 지식만을 추구하게 되면 율법적인 오만한 태도로 모든 것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자기 의에 사로잡힌 교만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만나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지 못하면 오랜 시간 교회만 출입했을 뿐 깊은 자기 연민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날마다 쓰러지고 패배하는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믿음이 결코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언제나 제자리 걸음만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영혼이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교회를 다니면 진리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허물과 과오만 보이게 됩니다. 결국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올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거나 그 믿음이 결코 정상적으로 성숙할 수 없는 그릇된 신앙의 태도와 자세들입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삶이 그렇게 절박하고 간절할 만큼 어렵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신앙이란, 가벼울수록 좋고 그다지 얽매이는 것이 아닌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가끔 불안한 마음에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정도면 그만인 것으로 만족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관해 조금만 강요받는 느낌을 받게 되면 이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의 영혼은 절실하고 간절하며 절박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득했던 날들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신앙의 내용과 질도 그렇게 얕고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매우 고통스럽고 불안하며 견디기 힘든 갈등 속에서 괴로움의 날들을 인생 속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자기의 상처와 고통에만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연민이 강하고 낮은 자존감 때문에 언제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상대적으로 세상에 대해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그의 내면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깊이 집중하기 보다는 언제나 공격할 대상을 찾고 비판할 여지 만을 찾아 끊임없이 불평과 원망과 타인에 대한 비난과 경멸을 가지고 공격적인 날을 세우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모두가 신앙이 자리 잡기에는 그 자아들이 전혀 깨어지지 않고 낮아지지 않은 강퍅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기 깨어짐을 통한 한없는 낮아짐, 결국 믿음을 갖게 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그렇게 비참한 자기 자신의 실존을 스스로 대면하게 만드시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의 영혼을 그렇게 산산조각 내십니다. 자기를 완전히 깨뜨리는 일들을 성도의 영혼 안에서 행하십니다. 다른 누가 아닌 내 자신이 가장 악하고 교만하고 비뚤어지며 그 내면이 뒤틀린 자라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내 자신이 가장 완악하고 강포하며 모순된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발견하게 하시는 은혜가 임할 때 비로서 인간은 자신의 추악한 죄성에 눈이 떠지고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중요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 앞에 서 있는 초라한 자신만을 생각하게 되는 신 앞에 서 있는 단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에 목이 매이고 눈물이 하염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게 되는 그 회심의 은혜와 그리고 진리의 더 깊은 깨달음 앞에 벌거벗겨진 듯 날마다 드러나는 나의 허물과 수치를 깨달으며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더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시선의 고정이 마침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를 성화의 삶으로 인도하며 더욱 낮아지고 낮아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멀어진 여러분.. 부디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십시오. 다른 것을 바라보며 당신의 영혼을 스스로 강퍅하게 만들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게 더 깊이 빠져드십시오. 그러면 모두를 사랑하게 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됨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존귀케 하는 겸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며 그 믿음에 도달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