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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93 (히 12:18-24)

2023.09.13 07:57

hc 조회 수:276

<묵상, 설교 한 토막>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먼저는 매우 두려워하기를 원하십니다. 율법 앞에 명백히 드러난 자기의 모든 죄에 대해서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며 가슴 아파하기를 원합니다. 아직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는 모든 자연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기를 원하시지만 유기된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우리가 성소나 지성소로 나아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현현조차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두려워야 하는 것이 죄인들에게 요구되었던 모습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현하실 때 보고 듣게 된 모든 신현의 증거들은 언약의 중재자인 모세에게 조차도 큰 두려움의 이유였습니다. 모세 오경 어디에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을 때 모세가 두려워했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의 기자는 분명히 모세조차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약적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두려움과 거룩한 공포, 그 자체였다는 것을 히브리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 아래서의 인간은 이렇게 모든 것이 두려움뿐이었다는 점을 강조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와 심판에 대한 숨막히는 두려움, 그 두려우신 하나님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 그것이 옛 언약을 대변하는 정서임을 히브리서는 웅변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아직 이 땅에 시작되기 전까지의 신앙의 정서이며 그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려움으로 공포로 하나님 자신을 계시했어도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했습니까.. 사랑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방인과 결혼하며 결국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하며 안식일을 범하는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 더욱 멀어진 것을 구약의 역사는 보여줍니다.

 

그것이 전적으로 타락하고 완전히 부패해 버린 무능한 인간임을 성경은 증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의 그 지엄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보여준 전적인 무능과 부패의 한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그 율법의 두렵고 떨림 아래서의 인간의 벗어날 수 없는 그 무능한 실존이 성경이 말씀하는 결론이라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 없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범접할 수 없는 그 두려움과 공포의 하나님의 모습을 감추시고 이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을 입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그 두려움의 벽을 허무시고 이제 그 두려움에서 영원히 벗어나 참 기쁨과 소망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통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율법의 그 무거운 장막을 걷어내고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하얀 비단 같은 칭의의 옷을 새롭게 아들을 통해 마련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도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사랑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깨닫게 하시며, 이제 인간을 구원하는 길은 그 두려움의 길이 아닌 참된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희생을 통한 은혜로 난 새로운 길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