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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33

2022.08.29 08:16

hi8544 조회 수:635

<묵상, 설교 한토막>

도비야는 암몬 출신으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수족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선하심’ 이었지만 그의 삶과 그의 행위는 결코 하나님과 무관한 사악한 자였습니다.
제사장 엘리아십,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거하실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참람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들입니다. 
이름들은 이렇게 거룩하게 지어 놓고 그들의 삶과 행실은 사악하기 이를 데 없었던 자들이 바로 도비야와 엘리아십 이었습니다. 
가장 경건한 척 하고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척, 고상한 척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추악한 악을 행하는 자들, 그들이 종교적으로 최고의 위치에 있었던 자들이었다는 것이 그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 골방의 용도에 대해서 이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기명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두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성전의 모든 방들은 제각기 용도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을 위한 십일조와 거제물들을 보관하는 방을 성전고를 담담하고 있었던 제사장 엘라이십이 유대인들의 간악한 대적인 도비야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 주었다고 성경은 도저히 믿기 힘든 그 사악함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서 모욕적이며 신성모독적인 악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 안에 있는 여러 방 가운데 한 방을 하나님께서 축출하라고 명하신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그것도 그 방을 맡고 있는 제사장이 내 주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 제사장으로서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패역과 간악의 끝을 엘리아십은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솔선수범 해야 할, 대 제사장이 이러한 끔찍한 악을 범한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허무는 가장 큰 적은 거듭나지 않은 성직자를 비롯한 교회의 중직자들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반열에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전혀 중생하지 않은 자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전혀 양심의 가책없이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일들을 일삼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과 방법대로 그릇된 방향으로 정치를 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진리가 아닌 길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탄 마귀가 교회에 성전에 심어 놓은 씨앗들일 수 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혼란과 혼돈에 빠뜨리고자 하는, 교회를 무너뜨리고자 함에 그 목적이 있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대제사장이 이스라엘의 대적 도비야를 위해서 성전의 큰 방을 내 주는 이같은 악을 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름들은 하나같이 거룩하고 경건할지라도 그들의 마음과 행위는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악을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대단히 올바른 신학을 표방하고 가장 거룩한 척 할 수는 있어도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람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지상교회 안에서는 이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을 하지만 그 속에는 추악함이 가득해서 언제나 세상과 손을 잡고 악과 불의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는 언제나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심지어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합니다.
 
부패와 타락은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직위와 위치에 있는 자라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적나라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는 항상 머리를 노립니다. 
종교 지도자가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면 성도 한 사람보다 훨씬 더 교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영적인 지도자를 노리고 그를 무너뜨리기 위한 계략을 일삼게 됩니다.
머리를 치면 몸이 무너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는 언제나 마귀의 역사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 감정론>이 쓰여진 이유도 유사 부흥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일들을 훼방하고 방해하는 일들을 교회와 성도 안에서 획책 해 왔습니다. 어느곳이든, 누구든 그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언제나 트로이의 목마처럼 사탄은 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서 결국 교회를 무너뜨리려 하는 악한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언제나 큰 물의를 일으키는 것은 구도자들이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성도들이 결코 아닙니다.
목회자나 장로를 비롯한 교회의 중직자들에 의해서 교회는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큰 혼란과 분열과 영적인 퇴락을 맞게 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앙의 가장 깊은 곳까지, 공동체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까지 사탄 마귀는 침투해 들어갑니다. 언제나 우리가 이러한 사탄 마귀의 공격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