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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68 (히 11:23-26)

2023.08.04 08:23

hc 조회 수:382

<묵상, 설교 한 토막>

 

‘죄의 낙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서 적당해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죄가 즐겁지 않다면 누가 죄를 짓겠습니까.. 죄는 달콤합니다. 불순종의 길을 기어이 결행할 만큼 죄가 주는 즐거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쾌락의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죄의 낙에 점점 빠져들면 결국 헤어나올 수 없게 됩니다. 점점 더 우리를 더 깊은 죄악의 구덩이로 이끌어 갑니다.

 

신자가 그 죄의 낙을 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삶을 위해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은 우리의 머리 속의 생각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 그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그리고 사랑이 공존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어야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거룩한 탄식 속에서 죄의 낙으로부터 결연히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 나아가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렇게 죄의 낙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돌아서서 결연히 믿음의 사람들과 고난을 받으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은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 시대에만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들과 함께 하셨음을 증언하는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삼위의 하나님 가운데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성자께서도 당연히 구약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과 동행하심을 전제로 히브리서는 이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은 것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은 것과 동일한 가치로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능욕을 당했으며 바로 이 가치를 애굽에서 그가 누릴 수 있는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오늘도 무엇인가를 이 세상에서 더 얻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얻고자 하는 것이 이 세상으로부터의 부귀와 명예와 영광이며 설령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만일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닌 세상의 모든 것을 덧없이 버리고 우리가 믿음 때문에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아간다는 이유 때문에 세상에서 박해와 핍박과 능욕을 당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여러분은 믿음의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믿음은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를 모두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아니면아니오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행복과 성공과 번영을 얻겠느냐? ‘아니오’ 세상의 모든 죄악의 즐거움을 버리고 주와 함께 고난을 받은 자리에서 끝까지 좁은 길을 가겠느냐? ‘예’ 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모세의 믿음은 애굽의 그 모든 부귀와 영화와 모든 특권들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락하고 모든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삶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동족과 함께 고난을 받으며 그들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리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막중한 사명이었습니다.

 

그 길은 참으로 고단하고 외로우며 견디기 힘든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는 그 길이 자신에게 더 큰 재물처럼 여겨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길 끝에 빛나는 영광이 하늘의 영원한 상,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그가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적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모세는 그 길을 걸어간 것이라고 히브리서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진리는 성도들에게 이 땅에서의 고난을 말씀하고 있고 이것은 반드시 지워지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의 넘치는 보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앙을 이루고 있는 가장 든든한 골격임을 우리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선택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도록 요청합니다.

 

믿음이 있고 그 믿음이 내 인생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성경을 통해서 강화되고 그 결정의 근거가 될 만큼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이해함에 우리 각자의 신앙이 출중하지 못하다면 그는 결국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과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은 성경 속에서 참으로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자들에게서 보여지는 모든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쓰디쓴 실패와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들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통해 그 믿음의 기반이 확고하며 그 위에 하나님을 아는 탁월한 지식과 깨달음과 그리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심오한 은혜가 누적되고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분명히 우리의 영혼에 외치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 나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지를 따지지 않고, 내가 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온전한 믿음의 결정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를 깊이 그러나 칼날같이 면밀히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그런 거룩한 고뇌는 결국 정확한 하나님의 인도와 섭리 안에서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믿음은 또 다른 지평을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만들어 가는 우리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의 분량을 가진 자들로 세워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결국 더 나은 것을 볼 수 있는 영의 눈과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담대한 마음, 그리고 그 결정을 결코 번복할 수 없는 하나님께 붙들린 선한 양심, 그리고 마침내 그 결정된 길을 가고자 하는 용기와 담대함, 믿음은 이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갖추어 나아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져 갈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세워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평생을 산 성도의 삶에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극적인 장면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시고 도우셨던 숱한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훈장처럼 그의 영혼에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일들이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내렸던 선택과 결정과 행동의 결과물임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신자의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는 바로 그런 증거들이 선명하게 존재해야 합니다. 그가 한 평생을 믿음으로 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천국은 그런 자의 것임을 그의 삶이 증명해 주는, 그것이 바로 이 땅에서 우리가 신자라는 이름으로 산 결과물들이며 그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야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쉬운 삶이 아닙니다. 점점 쉽게 예수를 믿고자 하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너무 분주하고 피곤하며 다른 우선 순위 때문에 신앙의 모든 의무들과 거룩한 책임들이 더욱 간소화되고 기피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라고 여러분은 자신하십니까..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믿음을 주목하십시오. 그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치열하게, 더욱 절박하고 간절하게 주를 믿으십시오.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