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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57 (히 11:13-16)

2023.07.19 22:51

hc 조회 수:290

<묵상, 설교 한 토막>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한 자들은 바로 그와 같은 고백과 삶을 통해서 그들이 어디에 속한 자들인지를 증명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본향을 그리워하고 소망하고 그곳을 찾고 있는 사람들임을 증명하는 삶을 이 땅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외국인이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단순히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경멸이 담긴 용어입니다.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에 부적합한 사람, 이곳에 결코 소속될 수 없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잘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대단히 부적합한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잘 어울리고 그러한 삶이 자신에게 매우 잘 맞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즐겁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나그네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체류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다른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중에 잠시 이곳을 경유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일시적으로 여관에 투숙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외국인과 나그네들이라고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표현한 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안주할 자들이 아니라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들의 본향을 찾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신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그렇게 외국인과 나그네의 처지에서의 삶으로 인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가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진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내세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고백이 있어야 더 책임 있고 성실한 이 땅에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올바로 이해하십시오. 기독교의 신앙은 이처럼 철저하게 내세를 지향하며 그 궁극의 가치를 바라보고 확신하고 소망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잠시 머물다가 떠날 곳에 대해서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오래도록 살아갈 집, 아니 영원히 거할 곳에 대해서 더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왜 너무도 분명한 이 진리에 대해서 그토록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삶의 우선 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깨닫지 못한 채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본향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라고 성경은 믿음의 조상들이 살았던 그 삶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돌아갈 영원한 나라를 그리워하고 있는 자들로 그렇게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드러나기를 그들이 원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원한 나라를 목적하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디론가 머지않아 떠날 사람들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우리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있습니까.. 그토록 고대하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지금의 모든 불편함 들을 거뜬히 견디고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입니까..

 

신자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그렇게 보여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삶입니다. 본향을 찾고 있음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성경은 염세주의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이 세상의 것들과 그리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물질에 대한 탐욕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삶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오늘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힘쓰고 애쓰며 살아가는 삶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생각하면서 유한한 가치들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고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