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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50 (히 11:7-12)

2023.07.10 08:18

hc 조회 수:660

<묵상, 설교 한 토막>

 

노아는 방주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이 같은 크기의 배를 본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는 바다를 본 적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는 160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거대한 배를 지었다는 것은 오롯이 믿음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가 익히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명령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전혀 해보지 않은, 머리 속에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던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인본주의는 내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인본주의의 신앙은 합리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때로는 인간의 이성적 추론도 경험도 과학과 상식도, 다수가 생각하는 옳음에 대해서도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120년 동안 달나라를 탐사할 우주선을 지으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노아가 하나님께 받은 명령은 쉽게 이해되고 수긍이 되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노아에게 지극히 무모해 보이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가 믿음이 없었다면 단번에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못합니다 저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저는 배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순종을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순종의 이유와 핑계와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늘어 놓습니다.

 

노아는 이 엄청난,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방주를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동의가 되면, 마음이 동하면 하겠다구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닙니다. 자기를 숭배하고 있는 증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면서 아내와 세 아들들과 세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멸망시키고자 하실 때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들만을 심판에서 제외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의미는 당대에 오직 노아의 가족들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의인이었으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었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모든 시대 속에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코 다수가 아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도 예수님 당시에도 성경은 한결같이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 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다시 올 때 과연 믿음을 보겠느냐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가 보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 믿음을 오늘 우리가 가졌는가 하는 이 문제가 우리의 모든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6 9절은 노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의인이며 완전한 자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멸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그렇게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던 것은 창세기 6 8절의 말씀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노아가 완전해서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한 결과가 그 악한 시대에 노아만 완전하며 의로우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주 예수 그리스도 구주로 믿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들만 의인이고 완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과 삶은 하나님께 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은혜를 받은 자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그 믿음이 진실된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이 더해가고 많은 연단과 시련을 넘어 우리의 믿음이 어제보다 오늘 점점 더 강화되어가고 있는 증거가 있어야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그렇게 주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까.. 우리는 점진적인 성화를 성실히 이루어 가고 있는 그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까..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증거들이 더욱 뚜렷하고 선명해지며 자기를 부인하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는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의 신앙과 삶이 이와 무관하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두려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