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묵상, 설교 한 토막 351 (히 11:7-12)

2023.07.11 08:01

hc 조회 수:404

<묵상, 설교 한 토막>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 절대적인 명령에 대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실 것이란 계시를 듣고 백 이십 년 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의 용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의 보존 때문이었지만 궁극의 목적은 노아와 그의 집의 구원을 위해서였습니다. 언약 백성의 보존을 위해서였습니다.

 

방주를 지은 노아의 이 행위를 히브리서는 세상을 정죄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지었던 그 행위는 당대의 타락한 인간들에게 복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가 바로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는 그 일의 진정한 의미와 그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를 향한 준엄한 메시지였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의 갖은 조롱과 비방에도 불구하고 그 가족들과 묵묵히 방주를 지어 나아갔습니다. 노아의 이 같은 방주를 짓는 그 결연한 모습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교회를 중심하며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일들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는 여전히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멸시와 조롱을 당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광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회를 중심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동맹을 맺은 지체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갑니다.

 

창세기 7 1절에,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노아의 의로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믿음이며 그 믿음으로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보여준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 일은 세상과 믿지 않는 자들이 보기에 지극히 어리석을 수 있고 미련해 보일 수 있는 일입니다.

 

주일마다 먼 거리를 마다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아 오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 세상의 찬사가 쏟아지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그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 모습 자체가 여러분은 이 세상과 구별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고 있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이 악한 시대에 귀하게 보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참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넉넉한 힘과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방주의 목적이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 노아와 그 가족들의 구원이었듯이 오늘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도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모든 의의 자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에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계획이 성취되고 있는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위대한 방주입니다. 마지막 때에 구령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되고 있는 이 복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 방주에 승선한 언약의 자손들입니다. 노아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거대한 방주를 짓는 일을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감당했다면 우리 역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이루고 지체들을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고 사랑하는 일들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이 시대에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방주를 지은 노아와 우리에게는 구원의 방주를 짓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은 그들이 살았던 모든 시대 속에서 방주를 지은 자들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펼쳐지는 교회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올바른 진리의 길을 좇아 가는 것으로 이 죄악된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의 그 좁은 길을 걸어갔던 모든 의인들의 후손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소유했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믿음 때문에 그 믿음으로 그 같은 삶을 감당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후손들입니다. 여전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지으며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그 영원한 새 언약의 약속을 굳게 지키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감당해 나아가는 의의 백성들입니다. 그것으로 오늘도 하나님을 멸시하며 진리를 비웃는 자들을 단죄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교회가 어떤 기능을, 어떤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존립하고 있는 것인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노아가 그 시대에 존재했던 이유이듯이 우리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