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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80 (다니엘 9장 1~19절)

2024.05.06 09:07

hc 조회 수:152

 

BC 605년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니엘을 비롯한 많은 유대인들을 포로로 끌고 왔습니다. 당시 다니엘은 14세의 소년이었습니다. 이후 BC 597, BC 586년에도 많은 포로들이 이스라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오게 됩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온 지 68년이 지난 BC 539년에는 바벨론을 무너뜨린 메대의 다리오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이 바로 이 시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때 매일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문을 열고 하루에 세 번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다리오의 모든 신하들의 음모에도, 그리고 그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그토록 담담하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깊은 기도 가운데 이미 이러한 묵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과 계시를 받고 있었던 다니엘은 자신이 살든 죽든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과 강퍅으로 인한 하나님의 이 징계하심에 대해서 심히 마음 아파했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당한 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 민족을 위해 이처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사실을 우리는 다니엘서 9장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로 이 시기에 구약의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70년에 이르러 마침내 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해서 매우 열렬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이에 다니엘은 금식을 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68년 동안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나라를 빼앗기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그렇게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악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바벨론에서도 우상을 숭배하며 강대국에 의존하여 하나님을 멀리한 채 현실에 안주하기에 급급해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런 동족들의 죄악된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율법을 결코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모든 나라와 민족들 가운데서 치욕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며 패역하고 강퍅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는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그 오래 참으심에 기대며 부디 이 백성들을 돌이키게 하시고 황폐된 하나님의 도성을 회복시켜 주시기를 하나님께 촉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박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고 있는 다니엘의 마음이 급해졌던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곧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했기에 그의 기도는 더욱 결사적이었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랐고 그러한 다니엘의 간절함은 그를 열렬한 기도의 자리로 내 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자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항상 제사를 드리고 있었고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그들은 종교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들의 삶은 전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식을 범하고 있었고 율법을 우습게 어기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단지 성전 안에서만 지켜질 따름이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사랑했고 하나님보다 실제적인 현실의 삶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이방의 신들을 언제나 더 가까이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회는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고아와 과부들이 넘쳐났다는 것은 그들이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신앙할 뿐 그들은 전혀 하나님과 지체들을 사랑하는 일에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께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죄악이었습니다.

 

점점 더 하나님을 멸시하고 진리를 비웃으며 성경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 속에서 교회와 성도의 믿음마저도 이제는 성경의 진리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는 모습들을 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무게라는 것이 어떤 시대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바로 영적인 심각한 위기라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여전히 생계와 생업과 행복이 여전히 삶에 가장 우선순위인 절대 다수의 황금을 숭배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오늘의 교회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유대인들이나 지금의 절대다수의 교인들의 모습이나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과 모든 율법을 지켜 살아가야 할 거룩한 의무는 시대에 따라서 우리들의 신앙에서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법과 계명을 어기고 외면하며 세상을 더 의존하여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 느낌을 따라 믿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그토록 고통을 당해야 했던 그 근본적인 이유와 결코 다르지 않은 심각한 죄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법과 계명과 율례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매일 나를 부인하며 그리스도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죄악의 넘어짐이 있을 때 우리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리고 이 시대의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쉬운 구원을 맹신하며 무율법주의와 율법폐기론에 기댄 채 모든 방종을 합리화하는 지극히 가볍기 이를 데 없는 자기중심적인 신앙과 구원은 결코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