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138

2018.08.06 09:06

solafide1004 조회 수:481

<아침에 띄우는 목양 서신>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눅22:33, 개역한글)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29-30)


그러자 베드로가 한 말이 위에 기록된 오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도 그리고 주님과 함께 죽을 준비까지 모두 되어 있노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베드로는 정말 주를 사랑하는 제자인것 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기 전에 주께서 하신 말씀의 내용을 보면 베드로가 왜 성급하게 주께 이런 고백을 드렸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내 나라에서 먹고 마시며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겠다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여전히 그의 생각은 예수께서 정치적인 메시야로 결국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실 때 자신도 주와 함께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고관대작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의 어리석은 생각은 어리석은 말을 그 입에서 내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한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옥에도 들어가고 함께 죽을 준비도 되어 있으니 주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때가 되거든 나의 이 충성심을 기억해 주셔서 누구보다도 높은 자리에 자신을 앉게 해 달라는 그런 의미였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께 말씀을 드린 베드로의 면전에서 주님께서는 곧 이어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옥에도 들어가고 함께 죽을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고 호기롭게 말씀을 드렸는데 주님께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고맙고 기특하다는 말씀이 아니라 네가 오늘 나를 배신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무안하고 민망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드린 말씀에 대해 돌아온 답변이 너는 오늘 배신자가 될 것이라는 말씀에 그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주께 부름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를 자부했던 베드로의 생각이나 믿음도 아직 이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랬던 베드로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의미를 모두 깨닫게 되자 그는 하루에 수천명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도가 되었고 고증에 의하면 십자가에 거꾸로 매 달려 순교를 한 아름다운 최후를 맞이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를 깊이 알지 못할 때, 우리가 진리의 의미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할 때 우리의 입술은 쉽게 말하고 우리의 가슴은 쉽게 달구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백과 감정은 진실된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복음의 진리가 주는 깨달음과 감동이 우리의 영혼을 관통하고 지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올바른 신앙의 고백과 그 고백보다 무거운 삶을, 사명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주를 좇는 제자의 삶이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의 입과 생각은 언제나 베드로의 그것처럼 가볍기 이를데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좇는 길이 정녕 어떤 길인지 안다면 우리의 입술은 무거워지고 가슴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으로 더욱 밀도있게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삶은 더욱 주도면밀해 지고 신중해 질 것입니다.


행동은 말보다 소리가 크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직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그 속에서 오늘도 주님을 깊이 만나는 신앙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주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입술에 잠시 머물다 떠난 깊이 없는 고백이 아니라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과 그 영혼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외마디 말이 아닌 중후한 믿음의 삶을 우리에게 바라십니다.

그것은 오직 진리가 영혼에 깊이 스며든 사람들 안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성급하게 말하려 하지 마십시오.

먼저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쓰십니다.

무엇을 하나님께 고백 드려야 할지는 그렇게 진리가 깨닫게 한 은혜로 그 가슴이 뜨거워진 이후에 자연히 우리의 입술에 담겨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성경 속으로, 그 진리의 원시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셔서 다 표현 할 길이 없는 영혼의 그 시원함을 그 청량감을 맛보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