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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61 (단 2:25-30)

2023.12.29 08:24

hc 조회 수:97

<묵상, 설교 한 토막>

 

하나님께서는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그렇게 겸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져 가도록 다듬으실 것입니다. 더 많이 받은 자,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자, 자랑할 것이 더 많은 자들에게서 더 많은 부분을 깎아 내시고 도려내시고 연단하실 것이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그 낮은 자존감을, 그 깊은 자기 연민이라는 이름의 지독한 자기 사랑을, 하나님을 향한 쉼 없는 원망과 불평을 반드시 우리 안에서 제거해 나아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나의 나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자들로 우리를 세워 가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말은 한 가지를 분명한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드러내고 높이는 것입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거듭 하나님께서 장래에 일어난 일을 왕에게 알게 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왕이 침상에서 꾼 꿈은 자신이 늘 제국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온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 장래의 일어난 일을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왕에게 나타내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 제국의 유지와 확장에 대해서 언제나 고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근동 지역 거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있었던 느부갓네살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땅을 계속 다스리는 일과 여전히 더 넓은 땅을 정복하고자 하는 일에 그 마음이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차에 하나님께서는 궁극의 장래의 일을 그에게 나타내 보이신 것이라고 다니엘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인간이 이룩한 국가와 비교조차 되지 않는 메시야의 강력한 영원한 왕국에 관한 계시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왜 꿈을 꾸게 되었는지와 그 꿈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관해서 기탄없이 왕에게 고했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설명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지극히 높이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칫 자신이 높임을 받게 되는 것을 경계하며 자신에게 왕이 꾼 꿈을 해몽할 수 있도록 그 은밀한 것을 나타내 주신 것은 자신의 지혜가 다른 사람들보다 출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꿈에 대한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마음으로 생각했던 것을 왕이 알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을 높인다고 하면서도 교묘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고자 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자신은 감추어지고 오직 하나님만이 드러나시며 높임과 영광을 받으시기를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지 모두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다니엘은 얼마든지 자신을 높이며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다니엘은 자신이 지금 왜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은 바로 이 이방의 오만하고 포악한 왕 앞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그 영광과 위엄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이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다니엘은 입을 열자 마자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에게 꿈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요 그 꿈을 풀어 설명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결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꿈이 왕의 마음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함으로서 상천하지에 진정한 신은 바벨론의 우상들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느부갓네살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늘상 제국의 미래에 제국의 확장에 대해서 자신의 야망을 좇아 고뇌하면서도 그 미래를 알지 못해 괴로워하고 마음에 눌림을 갖던 느부갓네살의 마음이 꿈에 반영되었으며 그 꿈은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꿈이라고 다니엘은 왕의 꿈을 해몽하기 전에 그 꿈의 출처에 대해서 이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통찰을 가지고 바벨론의 왕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을 비롯한 이 땅에 세워지는 모든 다른 제국의 역사 또한 인간들의 역사일 뿐이며 언젠가 하나님께서 세우실 위대한 나라 앞에서는 모두 철저하게 파괴되고 소멸될 가치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니엘은 이제 왕이 꾼 해몽을 통해서 밝히 드러내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세상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십니다. 인간은 이 세상이 영원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진정한 주인은 지금까지 물질과 문명을 꽃피우며 이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온 인간이라고 스스로 여깁니다. 인류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이 세상도 인간에 의해서 더욱 발전하며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보존되고 보호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인간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이 세상을 그렇게 통치하고 지배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러한 오만한 세상과 인간들을 향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힘으로 과학의 힘으로 첨단의 물질과 문명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인간들은 그 같은 재난과 재해 앞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이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그리고 지구 전체, 우주적으로 피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고 그 일들을 해결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무력한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들의 한계, 한 국가와 나아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무능함을 보게 하심으로 결코 이 세상은 인간의 의해서 인간의 지혜와 의지와 노력대로 발전되어지고 그 안전을 영원히 지킬 수 없다는 지엄한 사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세상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멸망을 향해서 치닫고 있고 마침내 모든 것이 소멸되고 사라질 때 궁극의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가고 인간에 의해서 결코 통제될 수 없음을 이 혼란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처럼 지금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탐욕에 몰두하며 그렇게 사악한 욕망의 지배를 따라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을 향해서, 장차 모두 소멸될 유한한 것들을 추구하고 집착하며 그로 인해서 그렇게 이 세상에서 괴로움과 고통과 두려움과 염려를 안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가 도래할 것을 알리고 그것을 대비하는 참된 지식과 지혜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심이 바로 궁극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