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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50 (단 2:1-16)

2023.12.14 08:17

hc 조회 수:168

<묵상, 설교 한 토막>

 

신하들은 왕의 무리한 요구에 깊이 좌절감을 느끼며 이제 목숨을 걸고 마지막 항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습니다. 왕이 지금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대한 권력과 권세를 가진 어떤 왕도 이러한 말이 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것을 신하들에게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들처럼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신들 외에는 결코 왕이 요구하는 것에 대답을 줄 수 있는 자가 없다고 단정지어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들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왕께서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신하들은 왕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신 문제를 풀 수는 없습니다. 인생을 하나님께서 가로 막으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과 번민을 주실 때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치 않을 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초라한 한계입니다. 바벨론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자타가 인정하여 왕에게 소집되어 온 바벨론 최고의 두뇌들도, 비상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 자들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 수밖에 없는 일이 지금 바벨론에서 그것도 왕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대상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사람과 어려운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참 어렵게 하는 대상이 우리들의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으며 직장에 상관이 될 수도 있고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괴팍하고 까다로운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대상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피하고 보지 않으면 그만인데 그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터져서 수습이 불가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우리에게도 어느 날 찾아올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답도 없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의 인생 속에서 만드시는 것일까요.. 그런 힘든 사람들을 우리 곁에 두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온전히 바라고 의지하며 그 문제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하고 극복해 나아감으로 우리의 믿음을 더욱 성장시키게 하시기 위함이고 우리가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시며 그 문제들을 풀어가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인생에 직면한 문제들을 인내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결국은 사람의 방법이 아닌 그들을 돕는 하나님의 방법과 능력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종지부를 찍게 되는지를 세상에,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보여주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서 온전히 드러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답이 없는 문제 속에 있습니까..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원하시는 바는 무엇일까요.. 하나님만을 담대히 바라고 의지하며 온전히 믿음의 방법으로 그 문제를 대응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하나님께 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어가고 극복해 나아가는 모습을 우리가 아는 모든 자들 앞에서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궁극의 목적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우리가 구해야 할 모든 것 가운데 무엇을 가장 열렬히 간구해야겠습니까.. ‘주여 우리에게 부디 믿음을 더해 주시고 우리가 확신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생의 모든 날들을 감당하게 하옵소서믿음을 주시고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오늘도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느부갓네살은 자신들은 도무지 왕의 꿈을 알 수도 그것을 풀 수도 없다는 이 같은 신하들의 반응에 격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벨론의 모든 현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왕의 지엄한 명령으로 이제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이 다 죽음에 내 몰리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까지 포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그 꿈으로 그를 몹시 고통스럽게 만드셨습니다. 제국을 한 손에 쥐락펴락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도 아니고 단지 꿈만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드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잔인하고 포악한 느부갓네살의 어처구니없는 분노로 인해서 바벨론의 현자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까지 위기가 닥쳤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그러나 이제 다니엘을 역사의 더욱 중심에 서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들에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자를 반드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 고집스러움과 교만함을 반드시 꺾으시는 분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결국 그 완고하고 완악함을 철저하게 깨뜨려 백기를 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사람의 어리석은 고집을 부린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결코 패배하시는 신이 아니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을 발견하고 깨닫지 못하면 헛되고 무의미한 인생을 살다가 죽을 뿐인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아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어떻게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알고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나의 어떠한 선택과 절정이 진정으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를 깨닫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 뜻을 이루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참된 신앙과 삶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