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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29 (히 13:20-25)

2023.11.08 08:18

hc 조회 수:232

<묵상, 설교 한 토막>

 

평강의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히브리서 기자는 기원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선한 일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며 그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함 이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완전해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진리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즐거운 일을, 우리에게만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즐거운 것을 이루어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구원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일이 우리에게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나를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부숴지고 깨뜨려 지는 것이 하나님의 즐거움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도의 삶에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깨뜨려야 하는 일들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모든 일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운 것,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것이 무엇일까요..

 

구약의 옛 언약 아래서의 그 불완전 했던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서 완전히 이루어졌고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영생을 얻게 된 자들이 모두 하나님을 신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희생 제물을 통해서 그리고 마음이 없이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나 율법주의에 찌든 자기 의를 드러내는 거짓된 예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그 은혜를 알고 믿고 감격하는 겸비한 마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이기에 이제는 우리 모두가 참된 예배자가 되는 일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4 24절에서 주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찌니라’ 모든 신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든 시대 속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한 나라와 민족을 이루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사야 43 2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외해야 할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찌들어 영혼이 죽어가던 자들에게 새 언약을 통한 참된 구원과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주께서는 오신 것입니다. 교회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로마 카톨릭에 의해서 더럽혀진 미사에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로의 개혁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드려지는 예배가 더럽혀지고 변질되고 타락한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그토록 미워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음란하고 추악한 모습으로 하나님 경외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거룩한 예배가 변질되고 타락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악을 저지르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40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지내는 동안 이집트 인들의 우상숭배의 모습을 보면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이집트 인들에게 물든 결과가 바로 그 같은 참람한 죄악을 저지르게 된 이유였습니다.

 

히브리서는 다시 유대주의로 돌아가 거짓되고 헛된 예배를 드리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얻게 된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는 사실을 강조해 왔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의 제도와 법은 결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이를 통해 의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제는 제사장을 통하고 희생 제사를 통한 예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지게 된 이 감격적인 사실을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참된 예배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얻게 된 이 구원의 진정한 기쁨과 감격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변질시키고 타락케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그리고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예배를 회복시키기 위한 역사였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구원으로 부르신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올바로 예배하게 하는 일을 주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예배를 무너뜨리는 죄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과연 믿음을 보겠느냐는 의미는 과연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자들이 존재하겠느냐는 의미입니다. 모두 자기를 경배하기 원하는, 부패하고 타락한 인본주의에 물든 이 마지막 때에 과연 자기를 십자가 아래 던져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하는 자를 내가 찾을 수 있겠느냐 라고 한탄하시는 주님의 탄식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그것은 단 하나 아들의 보혈을 통해서 열려진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그 참된 길로 나아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신령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모든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를 폐하시며 자기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할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의무로 여겨야 하는지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온갖 핑계로 주일을 그렇게 쉽게 어기는 일들이, 예배에 불참하는 일들이 얼마나 두려운 죄가 되는지를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예배에 빈번히 지각을 하고 예배 전에 여전히 잡담을 나누며 예배 시간 내내 잡념과 졸음을 이기지 못하며 간신히 한 시간을 견디는, 권태와 싫증으로 가득한 예배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가 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