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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48

2022.09.19 08:01

hi8544 조회 수:321

<묵상, 설교 한토막>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예외 없이 모두가 행복하고 포기할 수 없는 본능과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언제나 가장 사랑하려는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한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모든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평생동안 그것을 갈구하며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행하게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자신이 지금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다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을 소원하고 꿈꾸지만 행복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갑니다. 
순간 순간 행복이라고 느끼는 짧은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궁극의 행복을 소유하지는 못한 채 살아갑니다.
마치 채워지지 않는 구멍 뚫린 항아리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왜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지 그 이유 조차도 올바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생명의 기원, 나아가 이 세상 우주만물이 존재하는 그 이유와 목적을 밝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우주와 인간의 생명의 그 기원 등, 그 어느 것 하나 과학의 힘을 빌리고서 라도 분명하고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인간들이 세운 가설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만이 이 모든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타락한 지정의는 하나님의 존재와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부정하고 거부합니다.
 
시편 1편은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논합니다.
이 궁극의 행복의 길을 찾은 사람을 누구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 아들 앞으로 인도하신 거룩하신 성령을 통해서 그 존재하심을 깊이 발견하고 생애적으로 그 사랑과 은혜를 알게 된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자라고 성경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에 도달하기 전까지 인간은,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들은 모두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불행한 현실을 오늘도 순간의 육적인 쾌락과 즐거움과 맞바꾸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행복하자’, ‘행복해 지자’ 라고 자기 최면의 구호를 외치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용기를 북돋으며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불현듯 예기지 못한 순간 죽음이 찾아오면 전혀 이에 저항하지 못한 채로 그 인생이 소멸되고 마는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최후입니다.
그것이 허망한 인생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인간 자신을 떠 받들고 높이고자 하는 타락한 본성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견고한 자기 사랑의 껍질에 쌓여 있는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이 자존감이 성장하는 과정과 환경 속에서 혹은 세상에서 타인과 관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이것이 낮으면 낮을 수록 더욱 역설적으로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은 강력한 불꽃처럼 거셀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고 그것이 무너지면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게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연인들은 자기부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공관복음 모든 곳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 부인’ 이 바로 모든 자존심과 자기애를 완전히 장사 지내는 것이라는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이같은 말씀에 순종하여 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를 지워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그 삶의 숭고한 사명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자기 사랑과 자존심을 지키는 일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는 받아 주시고 자신의 제사를 거절하셨는데 가인은 이 사실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 나는 거절되고 동생은 받아들여진 것일까, 그는 그 원인을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자신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은 동생에게서 찾고자 했습니다.
 
자연인들은 자기불행의 이유를 자신 안에서 찾지 않고 모두 타인에게서 찾고자 합니다.
모든 것이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고 남편과 아내를 잘못 만났고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잘못된 직장에 들어갔고 모든 잘못된 만남에서 결국 나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믿고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과 나의 환경이 나의 행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문제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안에서 고질적인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밖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습니다.
자기를 정직하게 볼 수 있고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타락한 인간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의 주어진 운명과 같은 현실의 모든 이 고통의 이유를 모두 밖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절대로 그 해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왜 불행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지 그 궁극의 원인을 진리 안에서 깨닫지 않고서는 자신의 불행의 이유와 그 까닭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신문을 보십시오. 뉴스를 보십시오. 대부분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행한 일들 뿐입니다.
세계와 모든 나라들이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괴로움과 고통, 이를테면 전쟁과 질병과 죽음, 재해와 재난, 사고와 악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매일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로움과 고통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그것은 진리의 가치에 대해서, 성경의 진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계시가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를,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지를 전혀 올바로 알지 못하며 그것을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을 말씀하고 있는 책입니다. 존재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궁극의 시작과 그 끝을 말씀합니다.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와 이 땅에 선과 악이 존재하는 까닭을 설명합니다.
인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만나게 된 사람, 악인들의 삶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의 이 땅에서의 삶의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줍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자연인들은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 땅에서의 자기만족, 즉 행복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그 행복의 조건들이라고 여겨지는 세상의 모든 물질적인 것들과 육체적, 정신적 즐거움의 대상에 대해서만 집착하여 살아갈 뿐입니다.
물질이, 결국 황금이 궁극의 행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진리처럼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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