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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47 (히 11:1-6)

2023.07.05 08:09

hc 조회 수:1665

<묵상, 설교 한 토막>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신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신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설들이 존재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경은 그 이유를 명백히 말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며 그러하기에 성경의 기록만으로 유추해 보건대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창세기 본문에 보면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벨과 그 제물가인과 그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물을 드렸는데 문제는 제물이 아니었다면 결국은 사람의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아벨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고 제물을 드렸기에 아벨과 그 제물이 열납된 것이고 가인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갖지 않은 채로 제물을 드렸기에 가인과 그 제물이 거절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진 아벨의 제사와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열납하심으로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게 된 것이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없었던 가인과 그 제물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셨기에 히브리서는 믿음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이 아벨과 가인을 예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믿음이 없는 자라는 증거는 이후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사건과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나 하나님과 사람들이 두려운 나머지 성을 쌓은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없이 드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과 무관한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4 23절에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가르치는 진리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나의 열심,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행하는 그 어떤 종교적인 행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것일 뿐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자기를 높이기 위한 일들일 뿐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어떤 일이든 그것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결국 포기하고 중단해 버리고 믿음의 자리를 이탈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하게 이 자리에 나아와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진 자의 예배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올바른 믿음이 없는 가운데, 혹은 그릇된 신앙의 동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결코 동일한 가치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유의미한 예배와 예배자가 있고 무의미한 예배와 예배자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영혼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 하나님의 존재하심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것인지, 믿음이 없는 가운데 의심과 회의와 반감을 가진 채 그저 형식적이과 습관적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일 뿐인지를 하나님께서는 모두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행위일 뿐 예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는 믿음을 가진 자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과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겸비함으로 믿음 얻기를 간절히 구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하나님께서 그 예물에 대해서 증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벨의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그 제물과 제사를 받으시는 것으로 화답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는 그의 영혼이 잘 되며 그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고 더욱 충만한 은혜를 얻어 이 땅에서 복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자들의 영혼과 이 땅에서의 삶을 복되게 하십니다. 나날이 그의 영혼이 더욱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충만해지며 그의 믿음은 더욱 성장하게 되고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벨의 그 믿음은 그가 죽었어도 하나님 앞에서 증명이 되는 믿음이었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 10절을 보십시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존재됨은 하나님께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피가 하나님께 호소할 만큼 하나님께서는 아벨에게 일어난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 이제 가인을 징벌하시는 것으로 이 문제를 다루게 된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믿음으로 살았던 그의 존재는 하나님께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믿음의 자녀로 계속해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사라져 버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시편 37 10절에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것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잠언 10 25절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같은 책, 12 7절에 ‘악인은 엎드려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전도서 8 13절에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라고 악인의 사라짐을 성경은 힘주어 말씀합니다.

 

악인은 결국 어느 순간 허무하게 소멸하고 잊혀지는 존재이나 의인은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영원히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될 존재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을 이 땅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9 15~16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진 존재들이 바로 여러분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어도 하나님을 향했던 그 순전한 믿음으로 그 존재됨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그들이 바로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