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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34 (삼상 6:7-16)

2023.11.15 08:21

hc 조회 수:863

<묵상, 설교 한 토막>

 

벧세메스에 도착한 두 암소는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에게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번제의 제물이 되어 드려지게 됩니다. 선지자들은 수레의 나무를 쪼개어 땔감으로 삼았고 두 암소를 잡아 하나님께 번제의 제물로 드렸고 레위인들은 여호와의 법궤와 그것과 함께 배달되어 온 보물들을 모두 번제와 다른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 즉 법궤를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되돌려 주고자 하신 일을 위해서 이렇게 두 마리의 암소를 사용하셨습니다. 두 암소는 새끼들을 버려두고 강권적으로 하나님께 붙들려 벧세메스까지 법궤를 운반하였고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은 쪼개어지고 태워져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로 두 암소는 그 사명과 가치를 마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와 그 영광은 그 지으신 분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사용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으로 쓰임을 받고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벧세메스의 두 암소는 참으로 그 존재의 이유와 목적에 부합한 생명을 살다가 죽임을 당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제자들을 시켜서 사람이 타지 않은 묶여 있던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지시를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나귀는 그렇게 주님께로 인도되어 메시야의 위엄을 드러내며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주님을 모시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성도의 영광은 이렇게 주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을 받고 기여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꽃가루가 떨어지고 모든 사람들의 찬사가 쏟아지는 길과는 무관합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가야 하는 길이고 감당해야 할 일들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붙잡혀서 쓰임을 받게 되는 존재로서의 성도의 삶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믿음이 지향하는 진정한 결과입니다. 울더라도 가야 하는 길, 나를 쪼개어 불에 태우고 재가 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요 인생의 여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벧세메스로 가는 두 암소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길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길이요 그 무엇에도 가로 막힘이 없이 앞으로 곧게 계속해서 진행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삶, 안전하고 평화로우며 어떤 고난이나 극단의 고통이나 갈등이나 괴로움도 없는 고요한 시간을 인생 속에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신 그 곳에서 그 자리에서 그 모든 것 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 포기하면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우리가 지켜야 할 그 모든 숭고한 뜻을 지켜내는 길,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을 신앙하는 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그 믿음을 가진 자들은 결코 다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강력하게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고서는 그러한 삶과 사명을 흉내도 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믿음입니까.. 우리의 믿음은 과연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면 쉬 넘어지고 가라앉고 멀리 떠 밀려 버리는 그런 연약한 믿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찢어지는 마음으로 젖을 떼지 않은 새끼 송아지를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그 견디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계속 우리에게 원하시고 뜻하시고 계획하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지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어떻게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겠습니까.. 주의 길을 가면서 어찌 모든 것을 다 얻고자 하겠습니까..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다 맛보고 즐기면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마음이 진정 우리 안에 깃들 수 있을까요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말했습니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성도들이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고 이 땅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집착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영원한 나라에 두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의 부모나 자녀라 할지라도 깊이 실망하게 되는 일들을 겪게 하시며 우리가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실패와 낙심케 되는 일들을 통해서 이 땅에 대한 모든 소망들이 사라지게 하심으로 결국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하시는 일들을 우리의 인생 가운데 행하신다고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 둘 버리고 포기하고 내려 놓게 되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물질도 자녀도 명예도 내 자신을 향한 사랑도, 하나 둘 영원한 삶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슬픔도 이기고 상처도 극복하며 고독도 이기고 배신도 참아내고 궁핍도 이겨내며 결국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렇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붙들어 이끌어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