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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39 (단 1:8-16)

2023.11.29 08:18

hc 조회 수:856

<묵상, 설교 한 토막>

 

모든 일에 사사건건 원수처럼 각을 세워 대립하고 세상과 부딪히며 싸울 이유도 없지만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그 법을 지키는 일보다는 나의 이익과 세상과 적당히 화목한 관계를 위해 편법과 불법적인 관행들에 대해서 눈감고 타협하는 것은 신자가 죄를 범하고 악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왕이 주는 음식과 포도주라면 그 수준은 아마도 최고급의 극상품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결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황금의 가치보다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 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질의 시험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리에게 닥치게 될 환난입니다.

 

결심을 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세상의 어떤 것도 유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서지 않았고 분명한 뜻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치명적인 유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게 살아가는 그 삶이 하나님 앞에서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그 마음의 확고한 뜻이 결연히 세워져 있지 않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편 57 7절은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이키지 않을 확정된 마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요합니다. 불의한 이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길에 결코 서지 않으리라는 그 뜻이 여러분의 생애를 지배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뜻이 세워진 마음으로 확정되어 있으십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벨론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명령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복종하고 충성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개인적인 식단의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환관장의 허락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큰 틀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충성심 있게 어떤 일이든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개인에 속한,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진귀하며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나의 양심을 거스르게 하는 일이라면, 나를 죄에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결코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때로 신자가 금식을 하는 것은, 때때로 자신을 고독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은 세상에 의존하여 살지 않고,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더욱 하나님께 집중하고자 하는 신앙의 좋은 훈련이 됩니다. 세상의 임금이 주는 모든 것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고자 하는 우리의 신앙의 기백을 연마할 수 있는 이러한 훈련과 노력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집착하고 몰입하던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온전히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보내는 하루도 우리에게 버거운 일이라면 우리는 지금 과연 누구를 진정으로 의지하고 섬기고 경외하고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경외는 그 법을 지키는 것으로 증명되고 드러나게 됩니다. 자식이 그 부모와 스승을 존경한다는 것은 곧 부모의 말과 스승의 가르침에 복종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절대 명령에 대한 절대 순종, 그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입니다. 지금은절대라는 말에 대해서 총체적인 거부반응을 보이는 시대입니다. 절대 진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시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이 하고 싶은 죄와 악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절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진리가 부정되니 절대 신앙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이 시대의 모든 것은 상대주의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신앙에도 이러한 시대의 정신은 깊이 침투해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절대 진리, 하나님의 절대 명령, 절대 주권이 모든 것의 가장 최고와 최종의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내 상황에 맞게 가부를 결정하면 그만이라 여기는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 자신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린 상대주의, 다원주의의 시대, 이 혼란의 시대에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지를 고민하고 깊이 그것을 통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진정한 믿음과 믿음이 아닌 것이 진리를 떠나 온통 혼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의 정신은 점점 더 성경과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더욱더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인간이 하고자 하는 데로 절대 진리, 절대 명령, 절대 주권 같은 가치들은 모두 다 짓밟아 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 참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절대 권위를 좇고자 하는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큰 시련과 고난의 십자가가 될 것입니다. 세상은 더 이상 뜻을 세우는 자들을 과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절대적인 신앙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을 경멸하고 멸시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 옳다고 말해 주는, 모든 보편적인 인간이 하고자 하는 것이 다 옳고 바른 길이라고 응원하며 박수 쳐 주는 종교만 이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뜻을 세워서 말씀대로 교리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고 사업을 하는 것을 이제 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고 그뿐만 아니라 이제 그런 식의 신앙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시대가 우리에게 이미 찾아왔고 그 일은 더욱 급격히 발전해 갈 것입니다. 마음에 뜻을 정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