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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443 (단 1:17-21)

2023.12.05 08:18

hc 조회 수:773

<묵상, 설교 한 토막>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는 것도, 인생이 평탄하거나 혹은 심하게 요동치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들도 심지어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와 계획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것을 온전히 믿게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보편적인 인간의 목표는 내가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극복하고 이겨 나아가고 마침내 꿈을 성취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목표는 결국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신다, 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직면한 모든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상황과 때는 모두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그렇게 만들어 가셨고 섭리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일까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들이 이제부터 어떻게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루시기 위해 유다의 패망이 필요했고 바벨론에 끌려온 소년들 가운데 네 사람의 하나님의 뜻에 합한 소년들이 왜 등장해야만 했는지를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의 말과 행동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그 뜻과 섭리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을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계시지만 인생의 의미와 그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시면서 그 시간들을 지나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한 번뿐인 인생이 의미가 있습니다.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으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영혼의 희열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겠습니다. 17절에,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그 시대 속에 출현시킨 이 네 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당대 최고의 지식과 지혜와 명철을 얻게 하셨습니다. 모든 지식과 바벨론의 학문을 모두 습득하게 하시고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서 매우 뛰어난 기능을 발휘하는 탁월한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당대 세상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학문들을 두루 섭렵하며 그들을 대단히 뛰어나고 명석하게 만드셨습니다.

 

거기에다 다니엘에게는 이 세 친구보다 더 탁월한 재주를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이상, 즉 환상과 몽조, 꿈을 깨달아 그것을 풀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신적인 계시를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꿈과 환상으로 신의 뜻을 받는 신탁, 오라클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서도 하나님께서도 꿈과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꿈과 이상을 풀이한다는 것은 신적인 계시를 풀 수 있는 가장 뛰어난 능력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들은 당연히 최고의 대우를 받았고 왕들은 당연히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들을 우대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그 같은 특별한 능력을 하나님께서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누구도 감히 견줄 수 없는 탁월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잘나서도, 하나님께 잘 보여서도, 무엇인가 그렇게 할 만한 남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롯이 그렇게 하신 그 모든 목적과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이며 그분의 계획과 섭리와 뜻에 의해서였습니다.

 

자식을 왜 주셨습니까.. 여러분에게 왜 재물을 얻을 재능을 주셨습니다. 왜 직업과 직장을 주셨고 왜 진학을 허락해 주셨습니까.. 왜 남다른 외모를 주셨습니까.. 왜 당신에게 배우자를, 가정을 주셨습니까.. 그 모든 것들을 단순히 여러분의 행복과 만족과 자랑으로 여기라고 허락하신 것일까요.. 총명함을 주셨는데 그 총명함이 자기를 드러내기 위함 일까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매우 공부를 잘합니다.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대단히 지혜롭고 명석합니다. , 누가 영광을 받아야 할까요.. 그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누가 영광을 받아야 합니까.. 그를 이 세상에 그렇게 뜻하신 목적이 있어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획과 목적대로 그를 쓰기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그에게 출중한 지혜와 지식과 명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의 모든 뛰어난 지식과 지혜와 명철과 학벌을 가지고, 사회적인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자기만의 출세와 번영과 행복을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법과 계명을 우습게 여기고 자기 받은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자신이 높아지려 하고 세상에서 성공과 명성과 부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누구의 것입니까.. 누가 주신 것입니까.. 이 얼마나 참람한 일이고 그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일입니까.. 누가 그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으며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믿음의 지체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높이려 하거나 사람을 결코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으로 나를 지으셨고 저 지체를 창조하신 것일까... 그것을 우리 자신이 알고자 해야 하고 모든 부모와 모든 지체들은 그런 관점에서 자녀를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바로 그것을 깨닫고자 해야 합니다. ‘하나님 부디 이 자녀가, 이 지체가 자기를 지으신 그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와 뜻에 맞게 쓰임을 받게 하옵소서.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을 보이시고 지도하시며 인도하옵소서. 하나님, 나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루고자 하십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결코 교만하여 지지 않고 그 창조의 섭리의 뜻대로 사명을 발견하여 살아가는 나의 삶이, 이 자녀의 삶이, 이 지체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