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설교 한토막>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없는 자는 여전히 젖을 먹는 자를 의미합니다.
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갓난 아기에게는 엄마의 젖이 전부입니다. 그 이상은 소화시킬 능력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기가 점점 장성해 가는데도 계속 젖만 먹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유식을 하고 이후에는 밥을 먹고 부드러운 음식부터 시작해서 결국 질긴 고기까지 소화 시킬 수 있는 성장한 사람이 되어가야 정상입니다.
몸은 자라서 성인이 되었는데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면 성경은 그를 어린아이 같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단단한 음식, 더 깊은 진리를 깨닫고 더 강력한 말씀, 때로는 책망과 훈계의 말씀까지도 듣고 그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을 만큼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만 아빠가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이내 눈물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훈계와 책망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가 바로 영적인 어린아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등불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렬한 빛으로 우리의 영혼 가운데 말씀하시지만 문제는 우리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그 강렬한 빛의 대부분이 가리워 지게 됩니다.
온 마음으로 그 말씀에 집중하고 언제나 그 말씀을 사모하는 삶이 이어질 때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으면서 영혼이 올바로 자랄 수 있는데 언제나 우리의 마음 안에는 타락한 감정들이 이끼처럼 끼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거부감이나 반항심,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거기에 더해서 육신의 욕망이나 탐욕, 자존심, 세상과 물질에 대한 염려나 사람에 대한 갈등과 적개심 등이 우리의 영혼 가운데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넓게 퍼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는데 언제나 훼방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집중 보다는 언제나 세상에 속한 공허한 것들에 항상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심오하고 깊은 진리가,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에는 번번히 집중할 수 없고 진리를 깊이 깨닫거나 그 속에서 심오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날들이 지루하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점점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 가속되고 진리에 귀 기울이며 그것을 배우고 깨닫고자 하는 동기는 모두 소멸되기에 이르기 마련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보이는 게으름과 나태함이 군사처럼 몰려오게 되고 진리를 거부하기에 이르는 매우 위험한 영혼의 상태까지 내려가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은, 전혀 지각을 사용하지 않고 그저 될대로 되라는 식의 먹여주어야 하고 닦아 주어야 하는 수동적인 신앙의 태도에서 속히 벗어나지 않으면 결국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서 믿음을 잃어 버리게 되는 자리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해 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언제나 쉽게 죄의 유혹에 무너지고 타락하며 영적으로 방황하는 시간들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거짓된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게 됩니다.
아이는 잘 속아 넘어갑니다. 왜 그럴까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분별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이 부족하고 지성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영혼의 귀가 얇아 세상에서 들려오는 말들에 쉬 휘둘립니다.
그릇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말의 잘 현혹되고 마음이 동요합니다.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할 때 신자는 세상의 정신과 철학과 사상과 이념에 치우치게 되고 진리에서 멀어지게 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사상이나 시대의 정신과 이념에 미혹되고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반지성주의 입니다. 깊이 있는 성경의 지식을 배우고 깨닫는 것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이는 반드시 신앙의 큰 위기를 자초하게 됩니다.
결국 얼음 같은 영혼의 차가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바다처럼 넓고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이 우매한 사람일수록 자신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잘 믿고 있고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진리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우리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타인을 가르치기 이전에 내 자신의 수많은 부족한 부분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란 무엇이 의이며 우리에게 의로움을 선사해 준 원인이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다녀도 십자가의 그 복음을 경험한 바 없고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어떤 신령한 지식과 은혜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가르침은 길가와 가시밭과 돌짝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그의 영혼 속에서 결실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젖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자, 이 땅에서 물질적인 축복과 번영과 형통만이 전부라 믿는 자들은 진실된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채로 종교생활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을, 복음을, 그 진리를 경험하는 종교입니다.
말씀이 아닌 다른 가치를 추구하거나 그것을 갈구하는 신앙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앙이 아니며 따라서 그런 믿음은 결코 성숙의 길로 나아갈 수 없는 그릇된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