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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80

2018.05.15 10:05

solafide1004 조회 수:1803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5:13, 개역한글)

율법의 정죄와 억압으로로부터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은 그 택하신 백성들의 영혼을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부르신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다시 화목케 된 관계 안에서 영혼의 참된 자유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아 의롭다 하심을 입게 되었는지를 생생하게 깨닫고 경험한 자들 에게는 반드시 그 영혼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영원히 죄의 짐이 벗겨진 것에 대한 이루다 설명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참된 자유와 평강이 어떤 대가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는 자들은 결코 죄의 낙을 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다 표현할 길이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영원한 자유를 얻었음으로 이제 그의 모든 삶은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기 위한 자발적인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 채워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의 목적을 구현하는 삶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의 깊이가 한 성도의 영혼과 인격속에 깊이 스며들수록 그의 삶에 나타나는 모습은 자율과 방종이 아닌 스스로 ‘종노릇’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것에 가장 위대한 본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사람이 경험한 복음의 그 진정성의 진위는 무엇을 통해서 나타날까요..
그의 삶이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를 넘어서 그의 모습 속에서 자발적으로 종이 된 모습을 통해서 선명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속에서 귀를 뚫은 노예의 이야기를 주목해 보십시오.
율법이 이제 그를 그 종의 신분에서 놓임을 주었어도 주인과 그 가족을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종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귀를 기둥에 대고 뚫어 이제부터는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 주인을 위해서 헌신할 것을 서원함으로 종신토록 그 집의 노예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 종은 이제 더 이상 그 집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가장 신뢰하고 아끼는 주인의 가족이며 벗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귀를 뚫은 종, 자발적으로 종이 되어 기쁨으로 섬기고자 하는 그 마음, 그것이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셨으며 그 사랑과 은혜를 아는 신자의 마음이어야 함을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를 지극히 보배롭고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은혜를 맛본 사람은 그 감격과 기쁨을 가슴에 새기고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왕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이제 그는 힘써 자발적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겨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서 기꺼이 섬기기를 다하는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서 무한한 기쁨과 감사와 보람을 느끼는 참된 신자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종의 모습이야 말로 그렇게 까지 낮추어 우리를 섬겨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이며 우리 또한 그 사랑 앞에서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임을 깨달아 기꺼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서 더 큰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신 은혜를 오해함으로 언제나 삶 속에서 육신의 쾌락을 위해 죄를 지을 기회를 일삼으며 방종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른 신자가 아닙니다.

그 은혜 때문에 오늘도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 그렇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지체와 이웃을섬기며 살아가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그렇게 그 마음의 경향성이 더 뚜렷한 길을 만들어 가는 자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참된 신자에게 종노릇은 결코 부당하거나 억울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명예롭고 가장 사랑스러우며 그에게 임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구원이 참되고 진실된 것임이 증명되는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참된 겸손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힘써 그리스도의 노예된 삶의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는 이 거룩한 역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부어지를 소망합니다.

친구로 그 자녀로 여겨 주시지만 영원히 나는 그 분의 노예일 뿐이라고 여기는, 그 감격과 즐거움을 가진 우리들에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