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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74 (히 7:1-17)

2023.03.24 08:27

hi 조회 수:970

<묵상, 설교 한토막>


히브리서의 기자가 이렇게 긴 논증을 통해서 멜기세덱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오버랩 시키면서 또 구약의 레위지파의 제사장들과 멜기세덱을 비교하여 이 주제를 강조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레위 지파 아론의 계열의 제사장들과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대제사장직의 탁월성을 거듭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 그 근본적인 목적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올바로 깨닫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박해와 회유 속에서 요동치고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유대교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마음을 경계 시키며 절대로 기독교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 때문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히브리서가 집중하고 있는 한가지 주제는 그리스도가 유대교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멜기세덱이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세의 율법과 레위 제사장직과 비교할 수 없이 더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히브리서는 논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모세에게로, 복음을 떠나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히브리서는 모세와 율법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이며 모형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더욱 힘써 그리스도를 견고하게 바라보고 의지할 것을 히브리서는 강력하게 설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더욱 견고해 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고 물질적인 번영과 형통 보다는 우리의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해 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선명하고 뚜렷한 비교를 통해서 분명히 그것을 깨닫고 동의할 가능한 일입니다.
 
히브리서는 비교를 통해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판단하고 결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들이 알고 있는 모든 구약적인 가치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그들의 이성과 신앙에 호소하면서 이 비교우위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믿음으로 결코 배도의 길로 나아가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여러분은 왜 기독교이어야만 하는지, 왜 예수이어야만 하는지를 진리 속에서 반드시 발견하고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우리를 영원한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신 분이심을 알고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 고상한 지식과 그 믿음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악한 마지막 시대는 성경의 말씀하고 있는 모든 핵심적인 가치들을 모든 노력을 다해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지워 내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대속이 필요한 존재이며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 죄악된 실존을 통째로 부정하려 하는 것이 바로 이 타락한 시대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그리고 그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한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와 무능의 꼬리표는 결코 때버릴 수 없는 수치스러운 것임을 알기에 이 마지막 세상은 이제 하나님의 존재와 모든 죄인들을 구원할 메시야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무한한 인간의 우월한 능력이 오늘에 이르까지 세상을 발전시켜 왔고 인간의 정신을 진화 시켜 왔음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신을 부정한 채 인간 자체를 신처럼 떠받들어 인간의 위대성만을 드높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타락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악한 정신입니다.
그 정신은 바로 사탄에게 미혹된 인간들의 머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절대 진리가 이렇게 급격히 소멸되고 지워지고 있는 시대이기에 하나님과 메시야를 향한 절대적인 믿음 조차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참 믿음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의 자리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절대 진리에 대해서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더 이상 영생, 영벌, 심판, 죄, 구원 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상대화, 다원화 해서 절대 라는 말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이고 혐오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인간의 원초적인 죄와 악의 문제에 대해서,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를 사유하고자 하는 동기 조차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의 정신과 마음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구원과 내세에 대한 진지하고 절박한 물음이 만들어질 수 있겠습니까..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이 쾌락주의에 찌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정신이 무엇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구원과 믿음이라는 주제에 몰입하여 그 해답을 알고자 하는 거룩한 동기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배도자가 나오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더욱 절대 진리에 대해서 담을 쌓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일체의 무관심과 나아가 혐오로 일관하는 때에 누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하나님과 그 아들께서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해서 진지하며 신중한 관심을 보일 까닭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의 히브리서가 왜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독보성을 당대의 히브리인들에게 그리고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별히 이 말세를 만난 마지막 시대의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점점 쉽고 재미있고 간편하고 즐거운 그런 가치들만을 원합니다.
진리가 논증하고자 하는 이 고도의 지식을 추구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에 대해서 싫증과 권태와 거부감을 표현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 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분명히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없는 자들을 일컬어 영적인 어린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고 여전히 젖이나 먹는 자들, 더 깊은 진리를 전혀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그 진리에 깊이 공감할 수 없는 수준의 신자들을 히브리서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자는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통해서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절대 다수의 어린아이 같은 신자들에게 이 어려운 논증으로 가득한 히브리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임한 구원을 이 위대한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와 그 위대한 계획을 올바로 알고 깨닫지 못하면 그 무지하고 몽매한 신앙의 결과는 결국 흘러 떠내려 가든지 큰 구원을 잃어 버림이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결국 타락하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바로 그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과 영생의 이 모든 지식들을 모두 치밀하게 이해하고 깨닫고 경험하는 것 까지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는 우리의 즐거움과 마음의 평안, 다 잘될 것이라는 소망과 위로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곳에서 또 다른 종류의 희열과 만족을 얻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드시 깨닫고 이해해야 할 그 모든 진리를 올바로 배우고 깨달으며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구원의 은총과 믿음의 선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날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게 되더라도 우리가 믿고 있는 그 진리의 가치를 굳게 지키며 믿음으로 그 모든 날들을 이기는 삶을 이 땅에서 신자라는 이름으로 감당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신앙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고 견고한 지식과 진실된 믿음이 우리 안에 뿌리 내려져 있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혼의 닻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삶을 무의미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핍박과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김으로 흘러 떠내려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히브리서는 힘을 다해서 구약의 모든 말씀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일에 이처럼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까..
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말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한다고 고백했습니까..
왜 그같이 전도유망하며 자랑할 것이 많았던 그가 다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증언한 것일까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울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닻과 같은 가치이기에, 이것이 없으면 결국 인생은 파산을 피할 수 없기에 힘주어 성경이 말씀하려는 가장 중요한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집요하게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보다 위대하신 그리스도로 우리가 주님을 이해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결코 그리스도를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살거나 죽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에 대해서 모두에게 깊은 깨달음을 안겨 주기 위해서, 그리고 분명한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러한 영혼의 등불 같은 말씀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지식에 여러분의 모든 지정의를 집중하십시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고 우리는 결국 그 모든 진리 안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더 뜨겁게 주를 사랑하는 신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 모든 일들을 기필코 우리 안에서 그대 안에서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환난과 핍박과 근심과 두려움을 이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는 그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감당할 믿음과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는지, 그리고 주를 진정으로 믿어야 하는지, 부디 그 해답을 이 히브리서를 통해서 반드시 발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멸망할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가치를, 그 탁월하고 영원한 가치를 반드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