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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78 (잠 9:7-10)

2023.03.30 08:26

hi 조회 수:2174

<묵상, 설교 한토막>


지혜가 어리석은 자에게까지 초청을 하고 있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곧 거만한 자입니다.
 
‘거만한 자’ 로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조롱하는 자’ 라는 의미로 지혜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바른 교훈과 책망과 가르침에 대해서 이들은 전혀 귀담아 듣는 자들이 아니며 지혜가 설득과 교정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서 완고하게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꺾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거만하고 악한 자를 올바로 인도하기 위해 징계하고 꾸짖게 되면 도리어 그 징계하는 자가 이 어리석은 악인에게 능욕과 흠을 잡히게 된다고 잠언은 말씀합니다. 

거만한 자는 그의 내면이 교만한 자아로 가득차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생각만 언제나 옳고 자신을 책망하고 꾸짖는 권위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를 멸시하고 대항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책망과 훈계와 가르침을 거절합니다. 그의 죄악된 성품 자체가 완악하며 모든 지혜의 권면을 듣지 않으려는 강퍅함으로 그의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책망을, 일체의 교훈과 훈계를 거부하면서 도리어 자신을 그렇게 책망하여 바로 세우고자 하는 사람을 공격합니다.
지혜의 잠언은 그러므로 거만한 자를 책망하거나 훈계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도리어 능욕과 해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자은 항상 자기 자신은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를 가르치는 권위에 대해서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멸시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고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죄와 허물은 마땅히 회개함으로 돌이켜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자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앞에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책망과 훈계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수치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로 인해서 그 양심에 견디기 힘든 부끄러움과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자가 그의 영혼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백명, 천명의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그 뜨거운 시선을, 아무것도 속일 수 없고 숨길 수 없는 하나님의 눈을 더 의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참회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한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죄가 벌거벗겨진 것처럼 드러날 때 도망치거나 숨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비수 같은 꾸지람과 책망 앞에서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라고 즉시 죄를 자복합니다.
그가 왜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성도도 죄를 범합니다. 실수든 고의든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죄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합니다. 
그 죄에 대해서 책망과 훈계를 들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도리어 책망하는 자를 능욕하며 그를 욕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책망하는 것은 나의 영혼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망과 훈계를 통해서 그를 하나님앞에서 바로 세우기 위해서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 교만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꾸짖고 훈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자신의 거만함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목사를 통해서, 부모님이나 스승을 비롯한 모든 가르치는 권위를 받은 자들을 통해서 책망을 듣게 하십니다.
 
잠언이 강조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아비의 훈계를 들어야 하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는 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장 높은 곳에 있고자 하는 자, 그가 바로 거만한 자입니다.
성경은 그런 자에게 책망과 훈계도 아깝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거만한 자는 성경이 가장 최악의 인간으로 간주하는, 그에게는 책망과 훈계도 아까운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의 진리를, 그 지혜의 가르침을 거부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모든 진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르치는 자들을 존경하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가 배우고 꺠닫고 나누는 것을 사랑하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거만한 자가 설 은혜가 넘치는 곳은 없습니다.
거만한 자는 철저하게 고립되고 외톨이가 될 뿐입니다. 
아무도 그에게 책망과 훈계를 해 주지 않을 때 그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거만하며 어리석은 자로 하나님 앞에서 간주될 뿐입니다.
 
거만하고 어리석은 자는 배울 줄 모릅니다. 겸손히 배우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그는 항상 가르치려 듭니다.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군림합니다.
그런데 거만한 자일 수록 그 자신은 더 잘 넘어지게 되고 더 쉽게 죄를 범합니다.
그것은 그가 가르침을 싫어하는, 사실은 무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교만한 자가 넘어지는 법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꺾으시기 땨문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넘어진 것 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자신은 넘어지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결코 실수를 하거나 죄를 저지를 수 없는 사람이기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망도 훈계도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의 죄와 허물과 연약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는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도, 책망을 수용하지도 않습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가 없든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받은 그 십자가의 은혜가 모두 소멸되었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신자도 죄를 짓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언제나 지은 죄 앞에서 겸비함을 잃지 않습니다.
주 앞에서 나아가 회개하며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서 인정하고 명예롭게 그 죄의 대가를 감당하는 자입니다.
그것은 그 안에 자기의 자존심 보다 더 크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신 은혜가 언제나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강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