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6 20:23
유대의 시간으로 6시는 지금의 정오를 가리킵니다. 하루 중에 가장 태양이 밝게 빛나는 시간이었지만 바로 그 시각에 온 땅에 흑암이 드리워지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종종 흑암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할 때 세상은 종종 흑암으로 뒤덮이곤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과 징계와 재앙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날 임했던 흑암은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모든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이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 짙은 흑암으로 하나님께서는 벌거벗은 하나님의 아들의 수치를 가리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이적을 통해서 분명하게 깨닫도록 흑암의 두려움과 공포를 통해서 그것을 나타내신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오로부터 오후 3시까지 짙은 흑암이 예루살렘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만 보아도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지금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에, 유월절의 어린 양들이 도살 당하는 바로 그 시각에, 이제 주님께서는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바다니’ 이는 하나님과 완전한 단절을, 철저한 버림받음을 경험하고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외치신 외마디 절규였습니다. 죄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가장 생생한 증언으로,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음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은 우리들이 영원히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진, 소망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영원히 그 관계가 깨어져 버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죗값으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아무런 희망이 존재하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지옥은 다른 곳이 지옥이 아닙니다. 두 번 다시 절대로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주님은 죄인들 대해서 완전히 자신을 감추시고 다시는 그들을 향해서 눈길을 주지 않으시는 두려운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 다시 우리를 보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실 것 같습니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것과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라고 반응하시는 분들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단절된다는 사실이 자신이 죄를 지은 것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뭐라고 절규했습니까.. 시편 51편 11~12절에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 출세를 하고 명예와 권력을 인기를 얻게 해 주겠다. 이 세상에서 네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너와 함께 하지 않겠다.’ 만약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좋습니다 더 이상 저와 동행하지 않으셔도 저는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반응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라고 말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합니까..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대답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 같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말을 했을 자들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그들과 그 후손들이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결과로 기어이 그들에게 대갚음 되었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는 자들은 하나님 없어도 상관없는 나 자신의 형통과 번영을 꿈꿉니다. 하나님의 법을 마음대로 어기면서도 자신의 인생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과거에 우리가 살아가던 삶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을 멸시하고 살아온 우리의 모든 삶,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야만 했던 궁극의 이유입니다.
인간은 그 죄가 가져온 단절이 무엇인지를 전혀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에 불과할 뿐이기에,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가 가져온 그 끔찍한 결과를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단절로 인한 고통의 절규를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의 마음에 각인하신 것입니다. 죄의 저주는 단절과 버림받음, 처절한 고립과 고독이라는 진리를 주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공의의 징벌은 바로 하나님과 완전한 단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음이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영원한 죽음이며 영원히 하나님을 잃어버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잊혀 짐을 당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것이 죄의 결과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린 것은 낙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그 복된 관계였습니다. 다윗의 가장 큰 고통은 주의 성령이 자신에게서 거두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남이 되어 버리는 것, 아무런 관계가 없어지게 되는 것, 이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고통이며 괴로움인데 그것을 인간이 잘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살면서 느끼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아픔을 통해서, 관계의 파기를 통해서 그리고 죽음을 통한 완전한 단절로 우리에게 오늘도 그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죄의 가장 큰 고통은 영원히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우리가 회심을 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아파해야 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할 문제가 바로 나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이었고 이것을 다시 회복시킴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해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심을 깨닫고 확신하게 된 자라야 그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다시 회복된 이 복된 관계의 복원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대체 불가의 존재가 되셨다는 의미입니다. 대체 불가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십니까.. 여러분 중에 누가 이 세상을 다 줄 터이니 당신의 자식을 죽이라고 하면 그렇게 할 자가 있겠습니까.. 자식은 우리에게 대체 불가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지금 그런 존재이십니까.. 이 세상을 다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절대적 존재이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의미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는 고백의 무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