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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67

2018.04.26 09:41

solafide1004 조회 수:1377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4:10, 개역한글)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주 앞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합니다.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마음, 자신을 완전히 낮춘 겸비함까지, 왜 성경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높아지고 싶고 부요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에 재갈을 물리는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는것 일까요

왜 예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유쾌한 공생애를 살다가신 그 어떤 흔적도 남겨 놓지 않으신 것일까요..

신앙은 경건하고 거룩한 슬픔이며 죄에 대한 애통이고 자신의 전적인 무능에 대한 완전한 절망과 혐오의 그 감정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통렬한 회개의 그 끝에서 마침내 맛보게 되는 구속의 은혜에 대한 찬란한 기쁨과 영혼의 강렬한 희열을 생애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세워지는데 필수불가결한 과정입니다.

율법 앞에서 전적으로 무능한 자신의 모습과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언제나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죄악된 삶으로 인해 견디기 힘든 양심의 괴로움과 영혼의 깊은 슬픔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오늘의 내가 누리는 이 구속의 기쁨과 감격을 결코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영혼은 피상적이고 사변적인 신앙의 자리에 머물러 있기 십상입니다.

죽을만큼 아파 보지 않은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박한 마음은 찬송가의 가사에 절절히 배어있는,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다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이 이 몸 바칩니다’ 
라는 십자가에 대한 사랑의 깊은 정서를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은 낮아질 때 높아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능 때문에 애통하고 슬퍼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진정한 기쁨과 위로와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7:11, 개역한글)

신앙 안에서 거룩한 근심과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들은 모두 무익한 것입니까..?

그것을 올바로 경험하고 진지하게 깨달을 때 신앙은 비로소 온전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고 더 깊은 신앙단계로 발돋움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십시오.
더 깊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는 게으름에서 떠나십시오.

가장 큰 기쁨과 위로와 평안은 죄로 인한 지독한 슬픔과 자기혐오의 계곡을 지나간 자들의 것입니다.
그 과정을 생략한 자의 신앙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슬픔과 고뇌 없는 쉬운 평안과 기쁨과 위로 만을 추구하는 것이고 설령 그가 그토록 원하는 복음안에서의 진정한 기쁨이 그 영혼에 부어졌다 할지라도 그는 전혀 이를 감지하고 기뻐하거나 감격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쁨을 인지하고 맛볼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아직 그의 영혼에 미처 생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모든 과정에 충실하십시오 
당신의 생각이나 느낌이 아닌, 먼저 참된 진리와 올바른 교리 안에서 바른 지식을 쌓아가십시오.
기독교의 진리는 다분히 역설적입니다.
낮아질 때 높아지고 애통할 때 참된 위로를 맛보며 고뇌하고 근심한 후에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잊어 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각과 느낌과 판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진리안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경험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무지한 말들을 쏟아내지 말고 오늘도 진리 앞에 겸손히 머리숙여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빚어주시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참된 신자 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주의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