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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복음을 설교하고 계시는 그 시간, 그 장소에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께로 중풍병에 걸린 사람을 데리고 오려던 자들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중풍병 환자를 보십시오.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주님께로 나아갈 수 없는 전적인 무능의 상태에 놓여 있었던 자입니다.

 

이 중풍병 환자가 영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다 영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의 의지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거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없는 중풍병자에 지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 주었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하심의 결과를 통해서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인생에 닥친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으로 인해서 주 앞으로 나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계기를 통해서 결국 주님을 만나게 된, 생애적인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네 사람에 의해서 결국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된 이 중풍병자를 보십시오.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우리의 환경을, 우리의 삶에 여러 고난과 시련들을 사용하실 수 있는 분 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입추의 여지도 없이 사람들이 그 방안에 가득 찬 이후였습니다. 예수에 대한 호기심으로 집안을 가득 매운 자들의 이기심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기들 밖에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매우 좋아 보이지 않는 이 중풍병자가 들것에 실려 예수께서 계시는 이 집으로 들어오기 위해 시도를 하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갈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예수를 구경하는 자들이었을 뿐, 예수를 믿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이기심의 죄악된 본성은 진정으로 거듭난 예수의 제자가 되지 않고는 우리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의 병입니다.

 

병행 구절인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이에 그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침상 채 무리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그를 달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가옥은 보통 흙벽돌로 된 단층 슬라브 형태로 지붕이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지붕은 집 외부의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보통 나무로 들보를 놓고 짚으로 엮어 그 위를 덮고 그 사이를 다시 흙으로 메꿔서 비가 침투하지 못하게 만든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지붕을 뚫는 일은 판자 기와를 드러내고 흙과 집을 파해 친 후에 들보를 치워야만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들은 수없이 많은 설교들의 일반적인 강조점은 바로 이들의 행위에 대한 찬사와 그것이 믿음이라고 교훈하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발 디딜 틈도 없이 집안에 가득 모인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매우 엄숙한 시간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조용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천국의 복음을 조용히 선포하고 계시는 그 시간 그 장소에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붕 위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천장이 뚫리기 시작합니다. 흙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이어 볏짚들이 먼지와 함께 마구 쏟아져 내렸을 것입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들보들이 움직이고 구멍이 크게 뚫리면서 놀랍게도 사람이 들것에 뉜 채로 천장에서부터 서서히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일이었지 결코 칭찬을 받을만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을 설교하시던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 일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천국의 복음을 전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은 메시야로서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누구에게도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심지어 집 주인에게도 예수님에게도 사전에 어떤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씀이 선포되고 있던 그 자리에 그들은 지금 난동을 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설교 가운데 이 중풍병자와 그를 지붕에서부터 달아 내린 자들의 이 행동은 도리어 칭송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은 매우 무례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오직 자기들의 처지만을 중요하게 여겼을 뿐입니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는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지금 어떤 중요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포되고 있었는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친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병이 낫는 것만이 중요했을 뿐이었기에 그들은 집안에 사람들이 많아 정상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여겨지자 이같이 말도 안 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그 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나 이 중풍병자를 이 같은 방식으로 예수 앞으로 데리고 온 자들이나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자기들의 목적만을 위해서 예수를 찾았던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함입니까.. 자신의 어떤 간절한 바람과 목적과 이유가 있어서 교회에 나올 뿐, 그 외에 진리의 말씀에 대해서는 어떤 관심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종교적으로만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오늘 예수님이 계시던 그 집의 무리들과 그 난리의 주인공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거나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행하고자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교회 안에 많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깊이 알아가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그럴 의지도 없으면서 오직 삶의 안정과 가정의 평안, 자기가 하는 일의 형통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목적만으로 교회를 다니는 이러한 신앙은 구원 얻는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아직 전혀 다가가지 못한 단순하고 막연한 종교심일 뿐,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음에 우리는 더 몰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구경하기만 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결국 모두 예수를 십자가 못 박으라 소리친 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결국은 모두 배도자가 될 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하고 그 사랑과 은혜를 체험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주를 찾는 본질적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지붕을 뜯어서 친구를 내렸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시간에 이러한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메시야의 사역을 훼방하는 일입니다. 간절함은 분명 길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간혹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하게 만듭니다. 나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스스로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하게 만들게 됩니다. 내 처지와 내 상황이 이러하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에 불순종하며 공동체와 지체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여전히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임을 보여주는 방증이 되는 것입니다.

 

분명 이날에 이들이 보여준 행동은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행위는 오직 병이 낫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생각이 깊은 자들이었다면 주님의 모든 강론이 끝이 나고 주께서 그 집 밖으로 나오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와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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