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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75

2018.05.08 12:09

solafide1004 조회 수:953

<아침에 띄우는 목양서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3:30, 개역한글)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전무후무한 사명을 감당한 인물이었습니다.
광야의 걸인으로 그가 그토록 남루한 삶을 살아갔던 이유도, 그리고 어린 딸을 앞세워 요한의 목을 왕에게 청한 사악한 왕비 때문에 그가 그런 허망한 죽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도, 
모두 그의 뒤에 오시는 분을 더욱 빛나게 하시기 위함이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자신이 결코 영광을 얻으려 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메시야로서 이 세상에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실 때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생애를 바쳤습니다.

자신은 점점 쇠하여 지고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리게 되더라도 그리스도께서는 존귀케 되시고 더 빛나고 아름답게 인류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시기를 그는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왜 그를 여자가 나은 자 중에 이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나님 앞에서 큰 자 라고 성경이 주목하고 있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합당하지 못한 자라고 그리스도 앞에서 극도로 자신을 낮추며 주님을 향해서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시선을 돌려 그리스도를 주목하도록 만든 자가 바로 세례요한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높이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거의 언제나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고 드러내려는 의도들이 아직도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더욱 찬란하고 존귀하게 드러나는 일을 위해 우리의 삶의 방향과 내용이 올바로 조율되고 있습니까

‘나는 흥하여야 하겠고 그는 쇠하여야 하리라’

우리의 추구하는 바가 그렇게 세례요한의 마음과는 반대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 해 보십시오.
오늘도 나 때문에 주께서 흥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고 우선이 되시는 삶을 소망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판단 때문에 나에게는 희생과 불이익과 고통이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음의 영광이 더욱 아름답게 드러나는 삶을 선택하고 있는지 우리는 오늘도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삶의 궤적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주님 저는 행복해 지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주님만 기뻐하신다면 아버지의 뜻과 그 나라가 더 견고히 세워질 수만 있다면 저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예수 때문에 내가 행복해 지고 싶은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 때문에 내가 작아지는 것을, 나의 행복이 반납되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길 보다는 오늘도 내가 살고 그리스도가 쇠퇴하는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항상 뒤로 물러가 버리는, 삶의 중심이 여전히 나에게 번번히 발목 잡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 속에서 정녕 흥하는 것은 그리스도이십니까
내 자신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