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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5

2022.02.18 07:48

hi8544 조회 수:40

<묵상, 설교 한토막>

세개의 성문을 중수 한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골짜기 문인데 하눈과 사노아에 거주하는 자들이 담당했습니다. 
특이할 만은 점은 그들이 중수한 구간을 구체적으로 ‘일천 규빗’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천 규빗은 미터로 환산하면 450미터의 길이입니다. 
옛 문을 중수한 요야다와 므술람처럼 이들도 매우 긴 거리의 성벽을 중수했습니다.

북쪽 성벽 약 200미터 정도를 네 그룹이 힘을 합쳐서 담당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사노아 성읍의 사람들은 매우 긴 구간의 중수를 담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노아는 유다 지파에 속한 성읍으로 예루살렘의 남서쪽 약 22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성읍이 작다는 것은 거주민이 많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작은 성읍의 작은 인원이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감당한 부분에 두배가 넘는 구간의 중수를 담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다른 구간에서 비해서 성벽의 훼손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그들이 담당한 구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든지, 아니면 사노아 주민들의 성실과 그 열심이 매우 탁월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골짜기 문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삼일이 지나 답사를 한 지역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특별히 답사를 했다는 것은 이 구간의 성벽이 심하게 훼손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노아 주민들은 비록 작은 성읍에 살고 있는 거주민의 수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집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의 중수한 범위의 두배가 넘는 지역을 그들이 감당했다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큰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다른 사명감과 그 사명감에서 비롯되는 열정, 그리고 그 열정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향한 충성심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 많이 지체들을 사랑함으로 더 많이 충성하고 헌신하고 싶을 때 더 많은 일들을 자원해서 기꺼이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렇게 결코 대단한 일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해 낼 수 없는 일들을 해 내도록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약한 자들을 사용해서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없는 자들을 통해서 있는 자들을 수치스럽게 하시며 무지한 자들을 통해서 지식을 가졌다고 여기는 자들을 겸손하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많은 것을 받은 사람들 이를테면 금장색이나 향품을 파는 사업가들도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하지만 귀족이면서도 이 거룩한 일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과 달리 작은 성읍의 작은 인원으로도 다른 사람들보다 배나 더 많이 일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법입니다.

핫숩 처럼 두배로 일하는 사람들,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다 감당하고 타인이 해야 할 일까지 손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사람들, 우리가 부러워 해야 한다면 바로 이와같이 하나님께 넘치는 열정과 성실함으로 쓰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동일한 인생을 살면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두배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 조차, 자기의 인생조차 올바로 살지 않고 허비하다가 부끄러움과 후회 속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교회를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어떤 재직과 어떤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충성하는 삶을 감당할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