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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33 (잠 11:4-8)

2023.06.15 08:04

hc 조회 수:386

<묵상, 설교 한 토막>

 

의는 죽음을 면케 한다는 말씀에 이어서 완전한 자들은 그 의로 인해서 그 길이 곧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란 의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갈 때 그의 의로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이 평탄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의 법을 따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의 삶에는 장애물이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가 행하는 그 모든 악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불순종한 그 모든 일들로 인해서 결국 걸려 넘어지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넘어진다는 말은 그가 범한 하나님 앞에서의 모든 죄악으로 인해서 스스로 자기의 삶을 웅덩이에 빠뜨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불행과 고통을 자초하게 되며 고통과 낭패를 겪게 되는 일들을 당하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범한 모든 죄악에 대해서는 응분의 그 대가가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하나님의 뜻을 어긴 그 모든 결과들은 결코 좋은 열매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갈라디아서 6 7~8절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그 삶의 열매를 따게 되어 있고 악인 또한 그가 행한 모든 죄로 인해서 그의 삶에서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진리의 도를 떠나서 결코 행복을 꿈꾸거나 형통을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결코 신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6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른 자들의 의는 자신들을 구하지만 배신자들은 탐욕에 의해 잡힌다.’ 이번에는 의인을 정직한 자라고 지칭합니다. 위 구절에서는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정직한 자란바른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하나님의 기준에서 바른 자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은 내가 생각하기에 바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 22절은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냥 마음도 아니고 그냥 믿음도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합리적인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시는, 우리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그 길을 내 생각과 다르고 내 마음과 다른 진리가 가리키는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그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른 길을 우직하게, 자신을 부인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부인하고 자기의 감정을 부인하며 자기의 모든 상황을 부인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자는 결국 구원을 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특한 자, 즉 하나님과 자신을 기만하는 자, 무엇이 진리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지 알면서 그 길을 걸어가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자들은 결국 그 악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길을 가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로잡히다’ 라고 번역된 원문의 의미는 올가미나 함정, 덫과 같은 것에 걸려든 모습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자신이 내린 결정과 모든 판단으로 인해서 악에 걸려들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 고통과 비참과 멸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진리의 말씀을 언제나 가까이합니다. 그러하기에 말씀을 통해 얻게 된 지혜와 명철을 가지고 분별을 합니다. 그 진리의 지배를 받습니다. 강력하게 작동하는 양심을 통해서 지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바른 길인지 죄악된 길인지를 깨닫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진리의 깨달음을 마음으로 사모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그 인생에 실패와 후회를 예약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죽을 때 기대가 사라지고 재물의 희망이 사라진다.’ 악인의 최후는 허무와 허망입니다. 모든 기대와 희망이 헛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서 악인이 꿈꾸고 기대하던 것은 모두 일장춘몽처럼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악인의 모든 기대와 소망은 모두 추악한 탐욕과 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악인의 모든 욕망과 소망은 하나님의 영원한 것과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으며 죽음과 함께 모두 헛되이 소멸되어 버리는 가치들일 따름입니다. 의인의 삶에는 빛나는 미래적인 영생의 약속에 대한 소망과 설렘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고 이 세상에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며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내며 인내하고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초연하게 됩니다.

 

인생은 쉬 지나가 버립니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악인은 죽음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결국 인생은 모두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그 죽음 앞에서 한 평생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를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의인의 가슴 속에는 오직 한 가지 소망뿐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빛나는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꿈꾸며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계획들이 모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고 그렇게 성별된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치러야 할 모든 영적인 거룩한 전쟁들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주를 위해 고난을 당하고 시험과 핍박을 받게 되더라도 그 모든 시간들을 통해서 더욱 우리의 믿음이 강화되고 우리의 소망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이란 이 학교를 지나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에 필요한 모든 과정들을 신앙 안에서 겪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다듬어지고 성장하고 숱한 시련과 절망과 넘어짐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결국 의인이라는 칭호에 합당한 사람들로 만들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강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