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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8 (다니엘 3장 1-12절)

2024.01.23 09:49

hc 조회 수:1161

 

왕의 전령이 소집된 모든 자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내용은 나팔과 피리를 비롯한 모든 악기들이 소리를 낼 때 모두 엎드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이 금신상에 절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복종을 보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까지 그 모임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 그 자리에는 바벨론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바벨론의 피지배 국가와 민족들까지 모두 부름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금신상에 세워진두라평지는 바로 고대에 바벨탑이 세워졌던 바로 그 장소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시사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언제든, 고대나 오늘의 이 시대나 신이 되고자 하는 이 그릇된 욕망을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법을 부정하고 모든 기준이 인간 자신들이 되고자 합니다.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탈 기독교의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보편적인 도덕과 윤리, 질서와 상식과 법까지 모두 뜯어고치면서 모든 것을 인간들의 마음대로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지켜가야 하고 보존되어야 할 모든 전통적인 진리의 가치들을 전면 부정하고 인간에 의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창조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버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시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할 뿐 다른 어떤 가치를 위해서도 인간이 희생을 당하거나 인간이 원치 않는 것을 강요받거나 인간이 원치 않는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이 시대는 선언합니다. 인간은 결코 어떤 경우에도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개인의 능력과 관련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모든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주장합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타락과 무질서와 혼란과 혼돈과 더 큰 절망과 정신적인 붕괴입니다. 인간은 지켜야 할 법과 가치를 지킬 때 인간 다울 수 있고 질서와 건강한 권위 안에서 안전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파괴해 버릴 때 인간은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파멸과 붕괴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의 존재를 믿고 그 절대적인 존재에 기댈 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모든 문제로부터, 모든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고난을 이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고 바벨론을 대표하는 모든 고관대작들과 각 도시를 다스리는 대표들과 그가 정복한 나라와 민족들까지, 바벨론에 거주하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이방의 사람들까지 모두 불러들여 자신을 경배하게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계획은 이 금신상을 숭배하는 것을 종교화해서 이것을 모든 관리들과 백성들, 피지배 국가와 민족들에게까지 강요함으로 제국을 안정화시키고 충성과 복종을 이끌어내어 중앙 집권적인 강력한 정치적 통일성을 이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가 사용한 것은 바로 두려움과 공포였습니다.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경우에 그가 누가 되었든 간에 즉시 극렬히 타오르는 풀무불에 던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공포는 대중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을 모든 독재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숭배 사상에서도 이와 매우 흡사한 면이 있었습니다. 광범위한 영토를 다스렸던 로마 제국은 인종적인 다양성에 대해서 바벨론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로마는 모든 민족들을 통합해서 하나로 묶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황제를 신격화하여 그를 숭배하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황제의 흉상 앞에서 향을 피우며 이른바 황제에 대한 충성 맹약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카이사르가 주시다라고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한마디 맹세와 고백을 거부하여 모두가 사자의 밥이 되든지 아니면 인간 횃불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습니다.

 

오늘날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에서도 이러한 양상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독재자를 우상화, 신격화해서 궁극의 유일한 절대 권위를 주장하고 이에 대해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고 있는 행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악한 본성입니다. 모든 권위의 유일한 근거 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독재자들이 자신을 올려 놓는 참람한 짓들을 서슴지 않는 것이 오늘날 미개한 공산주의 사회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오늘의 세계를 보면 여러 곳에서 무슬림이나 힌두교가 지배하는 국가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충성을 강요받는 체제 속에서, 복종이냐 죽음이냐의 선택의 기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핍박과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만 살아가기에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이 악랄한 박해와 핍박에 대해서 둔감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이러한 일들이 지금도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모두 절을 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이 있었고 누구든지 절을 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지엄한 왕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다른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의 신상에 절을 하면 사는 것이고 이것을 거부하면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지금 바벨론에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의 전령을 통해서 명령이 떨어지자 악기 소리에 맞춰 모든 자들은 왕의 금신상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달리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생각할 이유도 없는 이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지금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에 너무도 당연하게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명령을 반포했을 때 다니엘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다시 이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높이고 그 이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그 순간이 임박해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저 사악한 느부갓네살의 곁에 두신 이유를, 그들에게 높은 자리를 얻게 하신 그 까닭을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여 그들은 이번에도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해야 할 바를 주저하지 않고 결행했을 것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어떤 순간이 찾아오든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이 땅에서 사탄 마귀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며 그들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고자 하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 마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