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16 08:13
참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실수와 죄악의 넘어짐을 통해서 분명히 깨닫고 돌이키며 그것을 통해서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어리석은 느부갓네살은 더디 깨닫는 자였고 하나님께 행하신 일을 쉬 기억하지 못하는 아둔한 자였습니다. 모든 박수들이 이번에도 그의 꿈에 대해서 답을 주지 못하게 되자 그는 그제야 다니엘이 생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다니엘을 호출합니다. 다니엘의 바벨론 식의 이름은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지켜 주옵소서’라는 뜻으로 바벨론의 벨이라는 신의 이름을 따라서지었다고 느부갓네살은 말하면서 여전히 그는 다신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벨드사살에게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입으로는 하나님을 칭송했다가 또 한 입으로는 그가 믿고 있는 우상들을 칭송하는, 느부갓네살은 그런 자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의 마음이 확증되지 않은 자들에게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한순간 바른 믿음의 길을 따라갔다가 어느 순간에 그 길을 버리고 또다른 믿음의 길로, 원래 가졌던 그릇된 신앙의 길로 되돌아가 버리는 경우들을 봅니다. 아니면 아예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 버리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좋은 것을 택하여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굳게 마음을 확정하고 하나님을 아는 바른 믿음의 길로만 행하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신자에게는 필요합니다. 물론 이 마음 또한 성령을 통해 은혜에 사로잡히고 진리에 붙들릴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가 신자가 아니라면 느부갓네살처럼 그때마다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진리로 바른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느부갓네살은 박수장 벨드사살을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안에 있는 거룩한 신들의 힘을 빌어 벨드사살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면 다니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그가 직접 나아갔을 것입니다. 막연히 그가 믿는 신들이나 다니엘의 하나님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가 그 하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을 보십시오. ‘네 안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그는 위기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명한 표현을 쓰기보다는 ‘네 안에 있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들의 능력이 너와 함께 하니 네가 이 문제에 해답을 달라고 말합니다. 느부갓네살의 이 같은 표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막연히 두려워할지 언정 그 자신은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들도 어떤 두려운 일들 통해서 어떤 믿겨지지 않는 결과를 통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악한 기세가 어느 정도 꺾이는 변화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냥 막연한 존재에 대해 두려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 두려움과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갑니다. 나를 살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시고 나를 죽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그 하나님 앞으로 자신이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을 자기 백성들에게 찾으십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으면 믿음이 있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기도를 부탁할 뿐입니다. 믿음이 있는 아내나 남편에게 대신 기도를 부탁할 뿐 자신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사에게 기도를 부탁할 뿐 정작 자기 자신은 간절히 자신의 문제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를 하나님의 계획 속으로 끌고 가시는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운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이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나를 도우시고 건지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다른 누가 아니라 느부갓네살 자신이 알아야 했습니다. 풀지 못할 것이 네게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 모든 어려움들이 이 고난들을 능히 이기고도 남을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구경하는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이 진리가 말씀하고 있는 믿음에 관해서 지식적으로 들어서 아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개혁파 정통 신앙의 탁월성과 그 정통성을 그 믿음의 확고함을 지식으로만 아는 분들이 되지 마시고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삶에서 이 신앙의 위대함을 우리가 경험하고 그 진리에 붙들리고 그것이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역사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우리는 소원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지..‘, ‘바른 신앙과 신학을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다니니까 내 믿음은 안전하겠지..’ 혹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이 이 신앙의 위대함을 직접 경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귀한 깨달음과 그 정교한 교리가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이 분명하고 확고한 은혜를, 그 견고한 붙드심을 매 순간 경험하시면서 내가 믿고 있는 이 신앙과 이 진리의 아름다움을 내가 고백하고 체득함으로 이 신앙의 좁은 길을 가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그것이 마침내 우리의 인생에 맞이한 어떤 위기와 고난과 시력과 박해 속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주는 견고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