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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리뷰 11 (다니엘 3장 1-12절)

2024.01.26 08:33

hc 조회 수:732

 

하나님께 사로잡힌 이 세 사람은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들을 높여 하사한 고위관직으로 인해서 결코 비겁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을 인정하고 그의 신하로 충성하고 있었지만 느부갓네살이나 그가 섬기는 우상들을 섬긴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형상을 따라 지은 금신상에 결단코 절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신자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어야 하고 세상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학교와 직장과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일하며 공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들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를 부정하는 세상이 우리에게 전하는 모든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 일을 하며 이 세상에서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누구보다 정직하게 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세상의 방식대로 불법이나 편법을 행해서는 안 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법을 지켜서 될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법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도 지킨다는 것을 믿고 그 길을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되 하나님의 법을 어겨 가면서 세상에 충성하는 것은 결코 성도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우리의 믿음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성실하고 정직하며 언제나 희생을 각오하고 선한 행실로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른 것을 책잡을 수 없도록 세상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유능하게 해 내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서 인정을 받으며 없어서는 안 될 자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난 이후에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훼방하고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게 하는 모든 부당하고 불법하며 비성경적인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결연히 저항해야 합니다. 결코 타협하거나 양보하거나 불법을 합리화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모든 일들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며 죄를 범하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언젠가 세상이 또다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왜 굳이 그렇게 큰 대가를 지불하면서 너희의 유일신관 만을 고수하려고 하는 것이냐.. 아무도 너희 신을 부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의 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세상의 법의 더 합리적이고 공공의 선에 부합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가가 정한 법을 따르고 너희가 이 땅의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면 예배를 포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왜 너희들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는 것이냐..’ 이러한 주장들은 대단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다원주의가 상대주의가 공리주의와 전체주의가 결코 기독교의 진리와 융합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는 다원주의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되신 신이며 그 신을 따르기 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적인 계명과 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원주의의 반대편에 선 자들은 모두 세상의 적이 되는 것이고 그들에게는 어떠한 관용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이 잔인한 그 대가일 따름입니다. 다원주의 세상에 맞서며 절대 진리는 없다고 외치는 상대주의를 거부하는 이 시대의 교회와 신자는, 그 신본주의적 일원주의의 신앙은 이제 세상의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는 길입니다.

 

유일신관을 가지고 다원주의적 종교관을 가진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상대적인 가치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 틈에서 우리는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고수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멸시한 채로 새로운 도덕의 기준과 윤리의 기준을 따르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윤리와 도덕과 법에 기반한 삶을 여전히 지켜 나아가야만 합니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고 다수에 의해서 지지받는 타락한 시대의 정신을 따라 만들어지는 모든 법과 제도에 대해서 반기를 들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이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기 어려워지는 시대를 우리는 분명히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 속에서 오늘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믿음은 과연 그것을 감당하고 지탱할 수 있는 믿음인지를 깊이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떤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까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들과 함께 같은 가치를 추구할 수 없는지를 증명하는 수단으로서 우리의 믿음이 발휘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견고하게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강건하게 해 주시기를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 마귀는 인간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약점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사탄은 그래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바로 이 죽음의 위기로 내 몰았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만 하는 상황 속으로 이끌어 가서 결국 하나님을 부인하게 회유하던지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상에서 제거하는 간악한 일들을 역사 속에서 오늘까지 반복해서 획책해 왔습니다. 그들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수단과 도구가 됨을 알기에 세상 속에서 그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언제나 혈안이 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사탄 마귀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입니다.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악한 세상을 이용하고 세상의 권력과 정치를, 사탄의 편에 선 악한자들을 이용해서 신자와 교회들을 박해해 왔습니다. 중세 시대에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카톨릭과 카톨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황제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는지를 보십시오. 사탄은 이렇게 세상의 칼을 이용해서 신자와 교회를 핍박하고 세상에서 끊어내려 하는 일들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게 사탄의 계략에 의해서 성도와 교회가 박해를 받으며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 수록 더욱 강력하게 복음이 전파되고 믿음의 위대함이 온 세상 가운데 드러나고 알려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탄은 성도와 교회를 이 땅에서 소멸시키고자 하지만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참된 교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죽음으로 성도를 겁박하고 공포를 조장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맞설 것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거룩한 교회와 참 믿음의 성도들이 우리들에게 보여준 위대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했던 모든 시대에는 이 같은 박해와 핍박이 존재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일제 시대에 그리고 625 전쟁 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며 저항했던 기록들이 존재합니다. 기독교를 멸시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아직 지금 이 시대는 종교의 자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전방위적으로 앞으로는 더욱 거세게 점점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들이 서서히 우리를 옥죄어 오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보았듯이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가가 교회에 개입하려 할 것이고 우리가 믿고 전하는 진리의 내용까지 검열하려 들것입니다. 성경에 혐오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차별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미성년들에게는 성경이 금서로 지정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과 뜻대로 모든 시대 가운데 자신의 종들을, 성도의 삶을 움직여 가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