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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헤드린의 악마들은 밤새도록 예수님을 심문하고 그를 죽이기를 결의한 후에 새벽이 되자 예수님을 결박하여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이 일을 얼마나 다급하게 진행하고 있었는지를 보십시오. 불의하고 불법한 자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가 유대에 파견한 제5대 총독으로 주후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린 자였습니다. 그는 뇌물을 좋아하는 탐욕적인 사람이었고 성격이 난폭하며 강탈을 일삼는 불의하고 사악한 자였으며 오만 무례한 인물이었다고 유대의 역사가 필로와 요세푸스는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공모하여 백성들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성전고에서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지속적인 폭정과 무고하게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학살한 것으로 인해 로마 본국으로 소환되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주후 36년에 해임을 당하게 되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빌라도는 자살을 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를 팔아넘긴 배반자 유다, 그리고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준 비겁한 빌라도 역시도 모두 자살로 그 비극적인 생애의 저주와 징벌을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마가복음 10 33절에서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라고 되어질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악인들의 의도대로 일사천리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 모든 일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의해서 예언하신 대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의 기록을 참고해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8 28~3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빌라도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빌라도와 가야바는 이익관계로 깊이 유착되어 백성들의 피를 빨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언제나 부패한 종교 권력가들과 세속 권력가들은 이렇게 그들의 이익을 위해 야합하고 결속되어 함께 이권을 나누어 먹는 타락한 자들이었을 알 수 있습니다. 새벽에 빌라도에게로 예수님을 끌고 갔는데 여기서도 참으로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그들의 역겨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이 시작된 날에는 부정하게 된다는 이유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빌라도의 집 밖에 있었고 빌라도가 자신에게 찾아온 이 유대교의 우두머리들을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슨 이유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지를 물었고 산헤드린 종교 권력가들은 주님을 행악자라 지칭하며 그의 판결을 위해 왔음을 밝혔습니다. 빌라도는 매우 귀찮게 여기면서 너희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떠넘기려 했지만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사법권이 없음을 이유로 매우 완강하게 재판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는 한눈에 보아도 예수의 행색이 유대의 왕으로 보기에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 문제를 매우 성가시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형식적으로 매우 비아냥거리는 투로 끌려 오신 예수님을 향해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의 몰골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굴은 침과 땀과 피로 얼룩져 있고 구타를 당하여 얼굴을 피멍이 들어 부어 있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유대인의 왕으로 여겨질 리가 없었던 유대인의 한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듯이 빌라도는 그렇게 물어본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짧지만 매우 힘 있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 2절에는 산헤드린의 권력가들이 고빌하는 예수님의 죄목에 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죄목은 세 가지였습니다. 백성들을 미혹한 것과 그리고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을 금한 것과 그리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점이라고 그들은 거짓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죄목을 이렇게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로마에 반란을 꾀한 정치적 죄목을 추가하지 않으면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도 않은 죄목을 만들어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과 빌라도가 나눈 이야기는 요한복음 18 33~37절에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와 주님의 대화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빌라도는 지금 예수를 고소한 이유 중에 하나로 예수가 백성을 선동해서 반란이나 혁명을 꾀했다는 산헤드린이 밝힌 죄목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냐고 주님께 질문을 한 것은 그가 정치적인 의미에서 유대의 왕이 되고자 하는지를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면서 빌라도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이 왕이기는 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왕으로 오직 진리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이 의미를 알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답변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단 며칠 만에 그들의 마음이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며 분노한 까닭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든 이적과 능력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을 위한 정치적인 메시야로 깊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확고히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이적과 기사와 능력은 그들로 하여금 그런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들의 모든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순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위대한 능력을 목격하고 경험했으면서도 그를 부인하고 죽이라고 외치는 폭도들로 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비범한 능력과 감히 맞설 수 없는 그 탁월하신 언변을 그들이 직접 보고 들었으면서도 결국 자신들의 종교적 권력의 아성을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예수를 기어이 죽이려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유대주의자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며 물질적인 복과 형통과 성공을 좇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존재들에 지나지 않은지를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과 행복과 우리의 안전 만을 오늘도 우상처럼 떠받들며 신앙의 가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 다를 때는 언제든 그 가치를 전하는 신앙과 신학과 교회로부터 얼마나 신속하게 떠나가고 그 가치에 손쉽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 지를 보십시오. 그래서 신본주의적인 개혁파 정통주의 신앙의 참된 길은 결코 넓은 길이 될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일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모두 유대주의자들처럼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 모두 자기만족을 위해서 교회를 찾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자기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거짓된 믿음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모든 이상과 철학과 이념이 진리가 충돌을 일으킬 때는 그런 이유 때문에 매우 공격적으로 변해서 교회와 공동체를 비난하며 비판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와 진리의 가르침이 다르다고 여기면 여지없이 등을 돌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릇된 신앙의 넓은 길을 가고자 합니다. 자기들의 이상이 무너지는 순간, 예수를 버리고 저주하고 욕하고 비방했던 유대인들처럼 참된 진리와 그 가르침에 등을 돌리고 자신이 원하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길로 행하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이 유대인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깊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신앙이 바로 유대주의자들처럼 자신들이 중심이 된 거짓된 믿음과 같은 종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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