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9 08:20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주께서는 갈리리 호숫가에서 어부로 생업을 하던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이 둘은 형제 사이였습니다. 시몬은 후에 아람어로 ‘반석’이란 뜻의 ‘게바’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으나 이제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그가 그 형인 시몬을 예수께서 인도한 것으로 요한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두 사람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보시니’라고 기록한 원문의 의미는 ‘그가 보셨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께서 그들을 주의 깊게 지켜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은 그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애정 어린 관심을 뜻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시몬과 안드레에게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들의 수고로운 인생과 그 인생을 지나가는 그 모든 힘겨운 과정들을 조용히 응시하고 계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우리가 얼마나 힘겨워 하는지를 알고 계시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고 주의 부르심을 통해서 어떤 길로, 어떤 사명을 감당하며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모두 아시는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지극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생업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놀고 있던 자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시몬과 안드레를 주님은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어느 날, 역사적인 부르심 앞에 서게 된 이 두 사람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신 그날도 이 두 형제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듯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그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날 그들이 바다에 던진 그물이 그들의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고기를 낚기 위해 던진 그물질이 될지 그 두 형제는 결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그물을 잡게 되었을 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낙향한 때였고 그들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며 다시 사명을 회복하게 되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모든 삶을 다 아시고 우리를 부르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하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을 죄들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나를 배신할 것을 알고도 결혼을 하고 사랑과 우정을 나눌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죄 많은 인생을 살아갈지를 모두 아시면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죄인들에게 임한 감당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여러분은 정말 알고 계십니까.. 주님의 말씀은 단순했지만 결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긴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에게 제자가 되면 무엇을 약속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따르면 5성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게 될 것이고 억대의 연봉을 얻게 될 것이며 언제나 가장 비싼 음식을 먹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들을 지으신 분께서 지금 그들을 쓰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주님은 후에 제자들에게도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명령하셨고 주인이 물을 때 ‘주가 쓰시겠다 하라’라고 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그 지으신 피조물에게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를 사용해야겠다고 말씀하신다면 피조물인 우리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네 주님,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잠깐만요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계산을 하고 따져 보고 나서 결정을 하겠습니다.’ 어떤 피조물도 그 창조주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주께로부터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구원과 영생을 줄 것이다. 이제 내가 너를 찾으러 왔다. 너는 나와 함께 이제 이 세상에서 나와 내 품 안으로 들어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며 영원한 낙원에 이르게 될 자의 신분으로 너의 인생을 내 안에서 살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셨고 우리는 그 거부할 수 없는 부르심을 받아 지금 이 자리에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발로 여러분의 의지로 주께로 나아왔다고 여기십니까.. 우리는 그렇게 주권적이고 강권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시몬과 안드레의 신분이 완전히 변화되었듯이 이 세상에서 나만의 행복과 형통과 명예와 인정을 위해 살아가던 우리가 나의 그 모든 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로 변화된 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