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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구원교리

2016.07.11 21:42

SDG 조회 수:882

영혼을 회심에 이르게 하시는 성령의 강력하신 구령의 행위를 올바로 이해 한다면 오늘날 교회가 무엇에 더욱 집증해야 하고 어떤 요소들을 반드시 교회안에서 청산해야 하는지가 분명해 진다.
칼빈이나 루터, 쯔빙글리 등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오르간을 악마의 도구라고 혹평하며 성당에 있는 오르간을 철거한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감화하심에서 비롯된 진지하고 뜨거운 회심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악기의 사용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인위적인 수단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영향을 우려하고 이를 배제하려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든지 사람의 감정을 속일 수 있고 인위적으로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악기와 음악에 존재하고 그것은 얼마든지 사람의 감정과 판단을 속여 진정한 은혜와 성령의 감화를 기만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성령의 회심에 이르게 하는 본질적 은혜와 생애적인 감동은 결코 이러한 것에 의존하거나 의존되지 않는다. 그에 비길 바가 못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하나님의 비수 같은 말씀의 은혜와 깨달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감화와 감동을 이러한 인위적인 효과를 통해서 대체하려는 저급한 시도들을 보편화 하고 있다.
신학은 점점 사변화 되어가고 있고 마른 전통 속에서 빠르게 신앙조차도 화석화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감동은 결코 진정한 회심과 중생의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이고 찰라적인 감정의 고양과 흥분을 불러 일이킬 뿐이다.
청교도들은 믿음 같으나 믿음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같으나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분별하는 것에 부단히 노력하고 이 문제를 첨예하게 다루었다.

역사상 어떤 시대도 청교도 시대 만큼 이 문제를 깊이 있고 집요하게 다루면서 성도의 중생이나 회심과 성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때는 없었다.
그들이 전착했던 관심은 온통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들의 결론은 중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이고 결코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의 합작이 아니라는 것에 언제나 일치하였다.
카톨릭이나 알미니안주의는 언제나 이 점에 있어서 정통 개혁주의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얼마든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회개와 믿음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고 중생을 원하다면 얻을 수도 있고 거부할 수 있다는 견해를 고집했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교리가 이렇게 왜곡되어 있고 뒤틀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에베소서는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린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자 라고 성경은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원에 있어 인간이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모든 입장은 결코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도 믿음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중생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라고 성경은 정의하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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