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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195

2022.11.23 07:15

hi8544 조회 수:355

<묵상, 설교 한토막>

오늘도 어떤 사람으로 인해 여러분의 마음이 아프십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괴로움 느끼십니까..
그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감당하며 인내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자의 삶임을 기억하십시오. 그 가치를 배워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의 그 긴 시간의 의미입니다.
 
당신의 그 인내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그 일이 당신의 생애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가장 아름다운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모든 능욕과 핍박과 고통을 당하시고 결국 죽임을 당하시기 위함 이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죄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진리는 웅변하고 있습니다.
 
처참하게 죽기 위해서 태어난 나의 인생이라면 우리는 그런 인생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한번 뿐인 인생인데 누군가를 위해 죽어야 하는, 고통 당하고 고난 받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그 인생을 여러분은 기꺼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의 출생을 저주하고 비관하지 않을까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 여기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떤 신이 인간의 죄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거나 자기 자신이 인간이 되어 인간들의 죄를 위해 죽는다는 말입니까..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어떤 신이 이러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계획을 세운다는 말입니까..
세상이 만들어 낸 모든 신들은 그 신들이 모두 가장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인간에게 절대 복종이나 희생을,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신들입니다.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칠 것을 강요하고 그로 인해서 이 땅에서 복을 얻게 해 주는 권위적인 신의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신은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그 인간을 너무 사랑했지만 인간들이 그 신을 배반하여 그 사랑과 약속을 저버리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인간이 됩니다. 
자기의 아들을 그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보내서 처절하게 짓밟힘을 당하게 하고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제물이 되게 하는, 기독교가 말하는 신은 바로 그런 신입니다.
그렇게 까지 자기를 배신한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신을, 바로 그 하나님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든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을 수 있는, 상식의 범위 안에 있고 추론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참된 신도, 진정한 진리도 아닙니다.
진정한 신과 참된 진리는 인간의 모든 예측을 뛰어 넘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받아 들여지지 않아야 그것이 진정으로 신적인 것이고 그것이 절대적인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 믿어지지 않는 대상이 어느 날 믿어지게 되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 나고야 마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자기의 백성들을 위해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인간이 되는 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들을 위해서 하나 뿐인 아들을 철저하게 버리고 그에게 죄를 물어 공의의 죄값을 치루게 하는 그런 신이 어디에 존재합니까..
 
도무지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구요?
저는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믿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되고 수긍이 된다면 그것이 과연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로서 의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논리와 명령과 그에 대한 순종을 말씀하시면서 이해되지 않는 그 대가와 영원한 결과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바로 기독교의 이 진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방법으로의 구원과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랑이기에 우리는 그 진리 앞에서 우리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결국 백기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진리이고 사랑이고 하나님이십니다.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끝없이 사랑하는 마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으십니까..
제가 생각할 때 그러한 사랑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 할지라도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랑해 버리기로 작정한 마음이란, 그가 나에게 뭐라고 하든 그가 나를 얼마나 실망시키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내가 그를 사랑해 버리기로 했고 그를 향한 내 사랑이 식어지지 않기에 그가 어떤 삶을 살든지 어떤 죄를 지었든지 관계 없이 끝까지 사랑하는 그 마음이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 존재할까요..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랑입니다.
사랑해 버리기로 작정하신 그 사랑은 그 대상의 상태와 무관하게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안에는 이 아가페 적인 조건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사랑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순종의 길은 그러나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쉽지 않은 순종의 길을 순종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형언할 길이 없는 은혜입니다.
일어나기 힘든 시간에 일어나게 하고 결코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게 하고 결코 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을 하게 하는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방법을 통해서 아들로 하여금 우리를 구원하게 하신 것일까요
10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 때문에 모든 것들이 그리고 그 분을 통해서 모든 것들이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시어 그들의 구원의 창조자를 고난들을 통해서 완성하도록 하는 것이 그분에게 적합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많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들이 구원과 영생의 영광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게 되는데 이 모든 일들이 ‘저희 구원의 주’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는 것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께서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이 모든 구원의 계획들이 완성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주’ 라고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주’ 라는 단어의 원어 적인 의미는 ‘창시자’, ‘개척자’ 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이 모든 구원의 계획의 위대한 창시자이시며 그 길을 개척하고 마침내 그것을 완성하신 완성 자이십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의 완전하신 그 고난과 죽으심의 고귀한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가 그토록 위대하십니까.. 
우리는 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까..
그가 그렇게 자기를 버리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택하신 자녀들을 궁극의 구원의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도록 하셨고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께서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사 그 모든 능욕과 질고를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을 친히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시기 위한 삶이셨습니다.
그 분은 모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들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기 위해 오셨습니다.
고난으로 말미암아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 모든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에게 가장 적합한 합당한 일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를 위한, 죄인들을 위한 이 처절한 희생과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왜 이토록 큰 것이어야만 할까요..
왜 보다 쉬운 방법으로 보다 간단하게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시면 안되었던 것일까요..
 
인간들은 인간이 스스로 세운과 규칙과 법들도 때때로 자기의 필요와 이익을 따라서 허물어 버리기 일수인 존재들입니다.
언제나 불법을 행하고 편법을 쓰고 그것을 은폐하고 은닉합니다. 
언제나 이러한 죄악들이 끊이지 않는 세상의 모습들을 우리는 매일 눈을 뜨면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얄팍하고 사악한 꾀를 부리고 언제나 속이는 일에 능숙한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공의와 법은 절대로 변개되거나 그것이 무너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시더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약속과 계명과 법을 철저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 자체가 모순되지 않으시고 결코 불의하지 않으시며 불법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으신 존재인 인간의 그 타락과 부패와 불순종을 보시고 그들을 다시 그 죄악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녕 죽이리라 하신 그 사망의 선언으로부터 그들을 다시 영원히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 계획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그 성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수납할 수 없는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리석은 그같은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진 것을 올바로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으며 그것에 감동할 수도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의 문제까지도 주권적인 뜻과 섭리를 통해서 주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믿고 그 사랑 앞에 감동하며 깊이 감사와 환희를 느끼며 아들의 고귀한 희생의 가치를 알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자들과 결코 이 모든 위대한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 추호도 관심을 갖거나 감사와 감동을 받을 일이 없는 자들로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셔서 구원의 모든 계획과 섭리를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불어 넣어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가 될 자들은 이 모든 진리에 깊이 더 깊이 감화와 감동을 받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죽는 순간까지 죽어 영원한 형벌에 거하게 되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증오하며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위대하신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심으로 그분은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한 가운데 계셨지만 그리스도는 이제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위대하신 계획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만물이 주 앞에 복종함을 우리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대속의 사명을 완성하시고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을 때에는 만물이 그 발 아래 다시 복종케 되는 영광의 자리에 오르심으로 하나님과 함께 만유를 다스리고 계심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간 동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되어야 할까요..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바로 그 일에 구원의 주께서는 친히 고난을 받으심으로 그 사명을 온전히 이루시는 일에 합당하신 분 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로서의 우리의 삶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복음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고백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가장 합당한 자로,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것을 믿고 오늘도 주님만을 의지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인생의 길을 감당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슬픔과 괴로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이 길을 걸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구나,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구나 하는 이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사명으로 여기며 주께서 부르실 때까지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에게 진정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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