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구약과 신약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교는 여전히 구약 만을 고집하고 있으며 아직도 자신들 만이 선택받은 민족이고 때가 되면 온 인류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만을 구원하기 위한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을 자신들의 경전으로 받아들이지만 이조차도 구약을 지극히 편협하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토라’, 율법과 그리고느비임’, 예언서케투빔’, 성문서 이 셋의 머리글자를 합해서 ‘타나크’라고 이름하여 이것을 경전으로 삼고 있고 거기에 구전 율법을 모은미슈나와 미슈나에 대한 토론과 해설을 담고 있는게마라로 구성되어 있는탈무드를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모든 말씀을 신약시대가 도래하기 전 신약을 준비하며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상징하는 그림자 로서의 한시적 말씀이라는 구약의 본질적 기능을 망각하고 이에 관해서 철저하게 배척하며 여전히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 있습니다.

 

메시야에 관한 모형과 약속으로서의 구약과,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실체와 그 성취로서의 신약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로 나뉘어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 명백한 진실을 그들은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는 구약적인 기독교 아니라 구약의 참뜻을 완전히 왜곡한 이스라엘의 민족 종교에 불과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서 구약 시대가 이미 막을 내리고 신약 시대가 도래한 이후 오늘의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유대교는 심각한 시대착오적인 과오의 웅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 유대교와 기독교,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성과 그 차이를 설명하면서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분명하게 확증시켜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하는 변증적인 성격의 문서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혈통과 그분의 삶과 모든 가르침을 기술함에 있어서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의 문제를 구약의 여러 성경을 인용하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복음서보다도 마태복음에서는 구약 성경의 내용이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안에서 16권의 구약성경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53, 간접적으로는 76회에 걸쳐 인용되었습니다. 이는 마가복음이 49, 누가복음이 80, 요한복음 33회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유대교는 내세에 관해서 다소 모호한 개념을 이야기하며 유대교 안에서도 종파별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교는 내세관이 구체적이지 않고 그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613개의 율법을 실천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면서 언약 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그들은 언제나 누가 더 율법을 잘 준수하는가의 문제를 두고 항상 자기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취약점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율법이나 언약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잘 지킬 것인지를 언제나 골몰하는 인본주의 종교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세관이 모호한 유대교에 비해 마태복음에는 메시야의 영원한 통치를 강조하면서천국이라는 단어를 33회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내용으로 보아 마태는 구약적인 지식에만 젖어 있던 유대교 출신의 개종자들에게 구약의 모든 말씀들이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음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이 책을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은 유대인 개종자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개종자들까지 위대한 구속사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동방에서 온 박사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방의 여인들, 다른 복음서에는 언급하고 있는 않은 유일한 표현인교회라는 단어의 언급, 그리고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구원에 포함됨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마태복음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등의 말씀은 이방인의 개종자들까지 마태복음의 독자들 중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됩니다.

 

본 성경의 저자는 세리이며레위라는 이름을 가진 마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레위는 이름이 아니라 지파의 명칭으로 여겨집니다. 세리는 직무상 당시 사회의 통용어인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속기로 문서를 작성하고 기록하며 필사하는 일에 능숙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제자 중에 마태는 성경의 기록자로 이 일에 매우 적합한, 잘 준비된 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가 세리였기 때문에 본 서에서는 숫자적 배열이 매우 정확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리 직업에 대한 빈번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레위 지파 출신으로 이스라엘의 전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그가 가진 세리라는 직업 때문에 그는 동족들에게 심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것이라 추측이 됩니다. 따라서 본서를 통해서 마태가 예수와 정통파 유대인 간에 갈등 관계를 그토록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자신의 이 같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족들의 혐오를 받은 세리였지만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사실에 대한 남다른 감격이 있었을 것이며 같은 유대인들 중에 자신처럼 많은 개종자들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성경을 기록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마태복음이 기록된 연대는 다양한 이유로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되던 AD 70년 이전인 60년경으로 보는 견해와 멸망 이후인 AD 80~100년으로 보는 견해 등 여러 견해들이 존재합니다. 마태가 본 서를 기록할 당시의 종교적 상황은 유대교의 회당과 교회의 잦은 충돌로 인해서 갈등이 매우 첨예한 때였고 초대 교회 내에서는 유대인 개종자들과 이방인 개종자들 사이에서도 간격이 서서히 좁혀지면서 이방인 개종자들도 교회 안에서 여러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던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이미 마가복음이 완성된 시기였지만 마가복음이 예수님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했고 그분의 말씀, 즉 설교와 교훈은 많은 부분 누락이 되어 있다면, 마태복음에서는 좀 더 자세히 그리스도의 설교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상세히 파고들면서 구약의 율법만을 강조하는 유대교 출신의 개종자들에게 예수의 복음과 구약의 연관성을 더욱 강조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 출신의 성도들이 구약의 율법을 자신들의 믿음과 어떻게 조화를 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나아가서 이제는 율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행동 강령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마태복음은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태는 유대인들이 대망했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 메시야 라는 호칭의 뜻은 다윗의 후손으로 로마의 식민 통치를 종식할, 억압 당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지상 왕국을 건설할 지극히 정치적인 왕을 뜻하는 의미로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께서는 이 같은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와 그릇된 기대감에 대해서 일관되게 그토록 단호히 거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해방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으로서 모든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며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지상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며 영원한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대한 이러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시면서 이제 이 복음서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