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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가운데 팔 복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교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팔복의 일곱 가지 복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성품과 삶을 말씀하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 복은 이 땅에서 그런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던 성도들이 이 세상과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떤 지극히 상반되는 대우를 받게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진리가 말씀하고 있는 최고의 역설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결국 어떤 대가조차도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면서 그 모든 일들의 마지막에서 어떤 찬란한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주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역설의 진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주께서는 가장 마지막에 이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신앙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끝이 바로 이러한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케 하고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화를 도모하는, 이 성도의 거룩한 사명을 이 땅에서 감당함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그 대가를 이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었고 그 뒤를 좇는 모든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의 길이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분명 구원과 영생을 약속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팔 복은 이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에 대한 정체성과 그들의 사명과 이 땅에서 보여주어야 할 천국 백성의 아우라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반드시 이 팔 복이 말씀하고 있는 그 믿음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심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목표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팔복의 말씀을 따라 우리가 나아가고 있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이며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 안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여전히 진리를 거스르고 나를 고집대로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도 깨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으려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닮지 못하게 만드는 원흉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10절은 팔복의 마지막 선언이며, 11~12절은 그 선언을 제자들에게 직접 적용하시고 그 팔복을 따라 살아간 삶의 결말에 관한, 소망으로 충만한 약속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받은 자’라고 번역된 원문의 정확한 의미는 ‘핍박을 받아온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이 진리 속에 성도는, 박해를 가하는 자들이 아니라 항상 박해를 당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실제적인 이러한 지독한 박해가 가해졌음을 교회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으며 이러한 핍박은 교회가 존재했던 모든 시대, 모든 곳에서 일어났고 지금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이 진리는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박해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핍박과 매우 가까운 관계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핍박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닌, 오직 뜻을 세우고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자신의 신앙의 고백을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자에게 임하게 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예배를 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슬림이나 유대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목숨을 잃고 집이 불타는 핍박을 당하는 일들을 겪고 있는 우리의 형제들이 이 지구상에 존재합니다. 뜻을 세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악한 세상이 그들을 할퀴고 물어뜯고 상하게 하는 크고 작은 핍박과 박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전혀 내게 불이익이 되거나 손해를 보거나 내 몸이 피곤하고 힘든 것을 원치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가 중심입니다. 내 삶이 여전히 더 중요하고 내가 더 소중합니다. 결국 나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서 예수도 믿고 교회도 다니는 것일 뿐입니다.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복음 때문에, 예수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욕을 듣고 싶은 마음은, 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 같은 이유들 때문에 이 자유롭고 여유가 넘치는 나라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핍박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리가 멀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여러분의 사명과 존재의 목적을 드러내기 시작하게 되면,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사신다면 단언하건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핍박과 조롱을, 비웃음과 멸시를 비난과 여러 불이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관계는 깨어지고 사람들은 우리를 멀리하고자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토록 박해라는 단어와 무관한 그저 조용하고 고요한 이유가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의 질서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산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고 조롱을 당할 모든 자리를 피하면 살아온 결과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단순한 핍박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죄나 허물이나 성숙하지 못한 인격으로 인해, 나의 부도덕함으로 당하는 모든 종류의 어려움을 핍박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의를 위하여’라고 단서를 붙이셨습니다. 자기의 무능과 어리석음과 게으름으로 인해, 명백한 잘못으로 지탄받을 일로 인해서 핍박을 받는 것은 이 진리에 해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의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는 경우로 제한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마태복음 3장 15절에서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장 6절에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다’ 하셨고, 20절에서는 제자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문맥 들에서 의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정의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의는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규정하는 의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의라 하여도 하나님께는 의가 아닐 수 있고 세상이 불의라 여기는 것이 하나님께는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의로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보이신 그 모든 삶이 바로 의입니다.

 

‘칭의’가 그리스도의 의가 주를 믿는 자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라면,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도가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을 통해서 실제의 삶에서 거룩함을 추구해 나아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의는 칭의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야 할 그리스도를 닮은 의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율례와 신앙의 고백을 굳게 지켜 나아가는 의로움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의로운 삶은 결코 우리의 의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의로운 삶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 또한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추구하고 그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정도에 따라서 의를 위해서 결국 박해를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성령은 그렇게 이 땅에서 우리가 의를 위해 박해를 감당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우리를 연단하시고 믿음을 불어넣으시는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궁극의 목적이 바로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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