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7 21:03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살려주신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게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닙니다. 교제와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원수와는 결코 식탁을 함께하지 않습니다. 매우 친밀한 친구와, 가족과 다름없는 자들과 식탁을 함께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4장의 장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언약의 식사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시는 만찬입니다. 이 놀라운 구약의 장면은 신약의 성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여기서 ‘참예함’이라는 말은 헬라어 ‘코이노니아’ 입니다. 교제, 참여, 함께 나눔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와 참된 영적 교제 가운데 있게 하십니다. 성찬에는 매우 개인적인 복음의 선언이 있습니다. 성찬에서는 그 복음이 마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너를 위하여 주어졌다.” “그리스도의 피가 너를 위하여 흘려졌다.” “받아먹으라.” “받아 마시라.” 그러므로 성찬은 약하고 흔들리는 믿음을 가진 성도를 몰아내기 위한 예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연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세우신 소중한 값으로 살 수 없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 묻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하셨을까?” “나는 여전히 죄를 범하고 있는데 정말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아 주실까?” 성찬에서 주님은 우리가 받게 되는 느낌이나 감정에 주목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빵과 잔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표가 가리키는 십자가를 붙들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의 근거는 나의 감정이 아닙니다. 현재의 나의 믿음의 상태가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입니다. 물론 성찬에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은혜의 식탁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자신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자기 성찰을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 성찰의 목적은 내가 성찬을 받을 만큼 예수를 잘 믿고 있는 성도 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도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성찰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의도 나는 포기하고 있는가?” “나는 구원을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만 의지하는가?” “나만 알고 있는 은밀한 죄를 여전히 사랑하며 그것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형제를 미워하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필요한가?”입니다.
성찬에 합당한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의 죄를 슬퍼하면서 그리스도에게 피하는 사람입니다. 성찬은 완전한 사람을 위한 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간절히, 진심으로 필요로 하는 믿는 죄인에게 주시는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눈은 우리 자신에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살피되 결국에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식탁은 장차 올 더 큰 식탁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의 식사는 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성경의 구속사는 식탁으로 끝납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성경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받는 성찬은 과거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현재에는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있습니다. 미래에는 큰 기쁨과 영광 속에서의 어린 양의 혼인잔치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오실 때까지.” 성찬에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오늘의 성찬은 완전한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는 작은 빵 한 조각과 작은 잔을 받습니다. 왜 이렇게 부족한 빵과 잔을 받습니까? 어쩌면 이 작은 식탁 자체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완성이 아니다. 이것은 맛보기일 뿐이다.” 더 큰 잔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더 이상 죄와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죽음도 없습니다. 더 이상 이별도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음으로만 바라보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순서를 마지막으로 다시 기억하십시오. 피가 뿌려졌습니다.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 우리가 참여하는 성찬의 깊은 의미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이 식탁에 나아올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빵을 받을 때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이 나를 위하여 찢기어지셨다.” 잔을 받을 때 생각하십시오. “그의 피가 나를 위하여 흘려지셨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죄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이 더 큽니다. 우리의 실패보다 그리스도의 의가 더 위대합니다. 우리의 연약함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언제나 더 넉넉합니다. 우리의 변덕스러운 감정보다 하나님의 언약이 더 확고합니다.
성찬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굳게 붙들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식탁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얼마나 확실하게 붙들고 계시는지를 보여 주시는 식탁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오늘의 식탁이 마지막 식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마침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뒤돌아보며 빵을 먹습니다. 현재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고백합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언약의 피로 우리를 사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자신의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공로를 가지고 나오지 마십시오. 자신의 의를 가지고 나오지 마십시오. 회개하는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빈손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오십시오.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식탁으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받아먹고, 마시면서 믿으십시오. 그리스도는 참으로 죄인을 위한 구주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