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5 21:17
물과 식량은 곧 생명입니다.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는 자에게 의는 곧 영원한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가치입니다. 의롭지 않으면 우리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우리는 절망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의를 강조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롭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은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하고 있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10절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2절에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된 것을 보십시오.
불의를 좇는 자들은 진리로부터 버림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심판을 받게 될 자들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불의한 자일 수 없고 불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자들일 수 없습니다. 불의에 동조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추종하는 일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의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드러내고자 했던 자기들의 노력을 통한 의가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우리 안에는 어떤 의도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은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롭게 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입게 되는 ‘이신칭의’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던 나 자신임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굳게 붙드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주께서는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참담한 마음으로 넘어질 때 마다 우리 안에는 어떤 의도 존재하지 않음을 절절히 깨달으며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이신칭의의 은혜를 굳게 붙들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가 진정으로 복된 자임을 주께서는 우리에게 교훈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전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서 불의한 존재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던져지게 될 자들이, 값없이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입어 영원한 멸망과 형벌의 저주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게 된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복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 이란 바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믿고 기뻐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깊이 알기 위해 힘쓰는 성도의 거룩한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이 같은 복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더욱 복된 관계를 회복해 나아가기 위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된 삶을 갈구하며 살아가는 신자의 거룩한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18~19절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의에 주리고 목말라해야 할 성도의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을 의미하는 또다른 성경의 표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게 되어 마침내 심령이 가난해지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온유함을 주십니다. 그 온유한 심령으로 신자는 이제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을 구하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 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지켜 나아가는 일에 힘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이라고 주님은 교훈하신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우리와 무엇인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야’, 이것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평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저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떤 가치를 언제나 바라보고 향하고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야..’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자는 그런 모습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삶의 태도를 가진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더욱 하나님을 아는 일에 갈망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그 깊은 의미를 더 상세하게 깨닫고자 진력하게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앞에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내 마음에 참된 평강과 기쁨이 있으며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게 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모든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칭의의 충만한 은혜가 영혼에 공급되지 않을 때 말할 수 없는 허기짐과 목마름을 느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우리는 더욱 거룩한 삶을 소망하면서 성화에 진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서는 세상의 모든 쾌락을 멀리하고 경건을 더 열심히 훈련함으로써 우리 안에서 강화되고 견고해집니다. 세상에서 오늘도 즐거움을 찾는 자에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거룩한 소원은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경건을 훈련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언제나 간절히 하나님에 대해서 주리고 목마름을 유지하게 되고 결국 그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의 영혼이 채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오직 진리 안에서 세상에서 결코 채울 수 없는 모든 기쁨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칭의는 오직 우리 밖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근거합니다. 성화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이루어 가시는 근본적인 영혼의 성숙과 변화입니다. 칭의는 영원히 단번에 이루어지는 은혜이고 성화는 평생토록 지속되는 과정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다는 의미는 의롭게 되기 위해서 선행을 쌓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 칭함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더욱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 마음에 소원을 두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이고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