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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 토막 323 (잠 10:30-32)

2023.06.01 08:13

hc 조회 수:307

<묵상, 설교 한 토막>

 

의로운 자의 입술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 지를 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을 하는 것을 기뻐 받으시는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말을 하는 사람이 의로운 자입니다. 신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진리에 입각한 참되고 바르며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말과 논리를 구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에게 호감을 사며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고 공감하는 그런 말들이 개념 있는 말이고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여 그것을 교훈하는 말보다는 사람을 높이는 말, 사람을 이해해 주는 말, 너그럽게 봐주고 인정해 주는 말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절대 진리를 싫어합니다. 옳고 그름을 말하고 죄를 지적하며 이것이 죄라고 분명하게 정의하는 말들을 기피합니다. 왜 일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인간이 지켜야 할 것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하고 결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를 따르기를 거부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자기의 마음대로 인간의 생각대로 모든 것을 방해받지 않고 행하고자 하는 악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악한 인간의 죄성들이 많은 사악한 말들을 만들어 냅니다.

 

진리를 근거로 그렇게 행하지 말라고 엄히 죄인들에게 성경은 가르치는데 세상은 인간들에게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렇게 해도 돼, 네 마음대로 결정해 네 인생이야..’ 라고 진리에 반기를 들고 사람을 두둔합니다.

 

어떤 말이 듣기 좋을까요, 어떤 말에 즉각 공감이 됩니까..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에 지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라는 말과괜찮아요 늦을 수도 있지요 하나님께서 그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옹졸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라는 말 중에 어떤 말이 더 부드럽게 와닿을까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두 말 중에 한 말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이 한 말은 사망으로 인도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이 있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자의 언어는 하나님께서 열납 하실 수 있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는 언어이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본주의적인 신앙입니다.

 

사람이 들어서 좋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을 할 것이지, 아니면 사람에게 불편하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을 수 있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법을 좇는 정직한 말을 할 것인지, 신자는 사람의 기준과 세상의 가치를 따라 시대의 타락한 정신을 담은 말을 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적인 엄격한 기준이 요구됩니다.

 

얼마든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으면 결단할 수 없는 그 길을 말해 주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거부감을 갖게 해도 하나님께 열납이 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이며 표현입니다.

 

바울은 갈리디아서 1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디모데전서 6 3절에서는,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이란 ‘different doctrine’ , ‘다른 교리를 가리킵니다. 교리와 성경에서 벗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함에 부합하는 가르침을 동의하지 않으면 이어 4절에,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리와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가르침을 좇게 되면 교만해지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의 지배를 당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호감을 삽니다. 모두가 그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과 원칙과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때때로 사람들에게 비난과 배척을 당하게 되는 것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점을 이야기할 때 마음이 힘들어 하고 거부감을 갖습니다. 귀를 틀어 막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입을 다물어야 하나요.. 이 시대의 참된 신자들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올바른 진리를 말하면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고 그렇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명한 진리를 전하면 그것을 견디기 못하고 교회를 떠납니다. 너무 부담스러워하고 괴로워합니다.

 

이 시대의 자녀들은 이제 더 이상 누구의 가르침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의 성경의 말씀에 따른 교훈과 책망에 대해서도 귀를 틀어 막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합니다. 이런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의인의 입술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그 기준을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을 합니다.

 

사람의 편에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패역한 말을 합니다. 사람이 듣기 좋은 말,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가증하고 진리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법을 허물어 버리는 악한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인간의 죄와 악을 두둔하고 동조하는 그런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논리와 아젠다를,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공감을 일으킬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하고 듣습니다.

 

한 사람의 말 속에는 그의 삶의 철학과 사상과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신본주의적인 말들이 그의 입에서 나오게 될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의 기준과 원칙에 부합하는 말이 있고 그와 전혀 다른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말, 무신론적이고 인간의 타락하고 부패한 죄성에서 비롯되는 악한 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자는 악인입니다. 사람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패역을 말하는 악인들입니다.

 

우리의 입술이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만을 전하고 그 가치를 지켜 내는 입술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무도 참된 진리와 성경이 말씀하는 그 가치를 드러내지 않을 때 오직 진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이 세상에서 온 몸으로 지켜 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