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21 07:58
예수께서는 그를 보시고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를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아마도 그가 거만한 유대주의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반응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무지한 청년에게서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단지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율법적인 열심을 가지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왔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열심으로도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로 염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 주님은 그런 그를 향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 십계명을 다 지켰어 그럼 이것도 한번 해봐’ 주님은 그런 의도로 지금까지 율법과 계명을 다 지켰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부족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목표를 못 맞히다, 획득하지 못하다, 기회를 놓치다, 빠뜨리고 깨닫지 못하다, 약속 의무 따위를 지키지 못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유대 관원 부자 청년에게 그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지적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재물을 팔아서 가난 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청년의 신앙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실상은 물질을 숭배하는 자였습니다.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하나님보다 물질의 우상을 숭배하는 자였습니다.
이 청년의 유대주의 신앙을 보십시오. 자신은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구원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생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전형적으로 신앙을 잘못 이해하게 될 때 일어나게 되는 반응입니다. 모태 신앙이었던 자들이 바로 청년의 때에 접어들게 되면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많은 경우들을 보게 됩니다. 어릴 때부터 주일이면 부모님과 함께 꼬박꼬박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나름 회개도 열심히 했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 보았으며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가졌고 착하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게 교회 안에만 있으면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자신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선명하게 자각하게 됩니다. 신앙적인 지식과 행위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죄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십자가에 대한 감격이 전혀 자신 안에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큰 혼란에 빠지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심을 머리는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믿어지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부인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유대 관원 부자 청년은 지금까지 하나님께 거짓 예배를 드려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시키는 것을 모두 지켜 행해왔기에 그것이 믿음인 줄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의문이 있었습니다. 내가 과연 구원받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일까..
이 청년을 보십시오. 계명대로 살았고 나름대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구원과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고 심히 근심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본주의 기독교, 자기 의와 행위에 의존하고 그 안에 안도한 거짓 신앙의 결과물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으로는, 단순히 율법적인 행위와 습관에 젖어 끊임없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거짓된 신앙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좁은 길입니다. 찾는 이가 결코 많지 않습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잘못된 구원의 길로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자의 수는 결코 다수가 아닙니다.
이 구원의 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이 참된 진리의 좁은 길로 인도해 주시지 않는다면 주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구원의 도에 걸러져서 모두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의를 드러내려는 교만한 자, 하나님보다 세상과 재물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유대 관원 부자 청년에게 다른 것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모범 해답은 사실 주님을 구주로 믿으라는 것인데 곧바로 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켰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이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인한 행위 구원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거짓된 신앙의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대답하자 다음 순간 주님은 그럼 이제 네 제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계명과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그에게 이제 그가 결코 지킬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물질에 대해서 그것을 포기할 것을 말씀하심으로 그의 모순된 거짓 신앙을 완전히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너는 결코 선하지 않으며 너는 여전히 무엇이 절대 선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그가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영생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그가 무엇을 그릇되게 생각하고 있었고 여전히 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직시하도록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이를 통해서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구원을 얻을 길은 율법을 지킴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 되심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주님께서는 깨닫게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 구원 얻는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무엇인가를 자신이 알고 지키는 것으로 자기 의를 삼으려는 자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예수를 잘 믿어서, 율법과 계명을 잘 지켜서 여전히 이 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영원히 죄인임을, 악인임을 깨닫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주님의 멍령에는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모순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인지를 보십시오.
자신이 선하다고 의롭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누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완전하며 의로우며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있는 자들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 지를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다른 지체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있습니까.. 자신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불완전함과 모순에 대해서 여지없이 비판의 칼날을 휘두릅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믿음을 의로 보셨지 우리의 행위를 의로 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와 율법에 대한 준수와 신학적인 교리적인 지식의 유무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율법주의의 관점으로 지체와 교회를 비판하고 정죄하며 판단하는 우를 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