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9 07:19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계획대로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소경이었고 거지의 신세였던 바디매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사람들의 눈에는 괴롭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배경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마침내 주님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오늘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거지 소경 바디매오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들이 경험한 모든 실패와 좌절과 절망과 고통들은 여러분을 예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적인 섭리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같은 괴로움과 결핍과 좌절과 절망이 있었기에 우리는 모두 주님을 찾게 되었고 주 앞으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아들 앞으로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그를 부르셨습니다. 거지 소경 바디매오의 절규를 모두 듣고 계셨던 주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외침이 그의 마음이 주를 향해서 더 간절해지도록, 더 절박해지도록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도 주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향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기도가 더 뜨겁게 타오르기를, 더 주를 향해 간절해지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다른 문제가 여러분에게 중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과 나 자신의 영혼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왜 사람들 때문에 걸려 넘어집니까.. 왜 나의 환경 때문에 좌절하십니까.. 주께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지금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부르자 군중들의 태도가 돌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험악한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는 그를 부르라 하시자 모든 무리들은 그를 달리 대우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흉물 취급을 받다가 주께서 그를 부르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는 주목받지 못하는 거지 소경에게 이제 예수께서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실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곧 기적이 일어날 것에 대한 군중들의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이제 그는 단순한 거지 소경이 아니라 이제 그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날지를 기대하고 바라보게 되는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곧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증명해야 하고 입증해야 할 사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가 어떻게 그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료하고 그 자신조차 포기했던 절망을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셨는지를 이 세상에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바로 그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아름다운 작품과도 같은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그것을 위해 오늘도 주님은 당신을 빚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로 나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외투는 낮에는 의복으로 밤에는 덮고 자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소경 거지에게 이 겉옷은 밖에서 잠을 자야 하는 처량한 처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집어던지고 주님께로 나아갔다는 것은 그가 지금 이 순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자신의 눈이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 결연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으며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이 같은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오직 예수뿐이라는 절대적인 필요와 갈망이 있었는지를 돌이켜 보십시오. 어쩌면 이러한 모습들이 전혀 생소하게 여기지는 분들도 분명 여러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바디매오에게서 보여지는 이 모든 모습들에서 거리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동기, 교회를 나오게 된 것은 이러한 오랜 고통과 자기 절망 속에서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된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따라서 단지 가족을 따라서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녀온 것이 전부인,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와 매우 친숙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신앙의 동기로 인해서 생겨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이 같은 간절함과 절박함 시급한 마음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 중에는 종교적인 취미 생활이나 혹은 마치 보험에 드는 정도의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다수 존재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 정도의 믿음만으로 구원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우리의 인생 속에서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대속하신 은혜가 우리에게 너무도 절박하고 절실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떤 생애적인 계기가 우리에게 찾아올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반드시 우리에게 일어나고 그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믿음을 갖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막연한 관념이 아닙니다. 구원받았을 것이다. 영생을 얻게 되겠지.. 라는 정도의 막연한 생각이 아닙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마음과 뜻과 생명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정으로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는 것,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강렬한 거룩한 욕구와 열정이 우리 마음에 생기고야 말게 된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것이 어떤 고난과 핍박이 와도 내 생명을 다해 신앙의 고백을 지키게 되는 바로 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바로 예수를 만나 구원에 이르게 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여러분 안에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그 일을 마무리 지으실 것입니다.
신앙은 종교적 취미생활이 아닙니다. 거지와 같고 소경과 같았던 죄와 타락으로 인해 고통과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한 존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게 됨으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그 신앙의 고백을 통해서 예수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된 것, 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기꺼이 주를 위해 좁은 길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영생에 이르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를 믿게 되고 내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됨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위대한 기쁨으로 내 영혼을 충만하게 적시게 된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자들이 바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를 언제나 예배의 자리로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호기심으로 언제나 성경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이 같은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고도 아직도 나를 온전히 부인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괴로움과 고통으로 눈물 젖은 얼굴로 오늘도 주님께 나아가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