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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성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미리 면밀하게 살피셨습니다. 다음날 주님께서는 다시 성전으로 오셔서 무엇을 행하실지를 그곳에서 마음에 정하신 것입니다. 이윽고 다음 날 베다니에서 휴식을 취하신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1 18절에 의하면 다음날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성 안으로 들어오시는 길에 주님은 시장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란 새벽 3~6시를 가리킵니다. 이른 새벽에 숙소에서 나오셨기 때문에 주님은 아침을 드시지 않은 상태에서 허기를 느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주님의 모습에서 인성을 가지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조반을 들지 않으신 주님은 멀리서 무화과 나무에 잎사귀들이 무성한 것을 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무화과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셨고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만큼이나 흔한 과일나무는 무화과나무인데 무화과는 보통 6월에서 8월 사이에 완전히 익은 열매가 맺게 됩니다. 유월절이 4월에 있음을 감안할 때 주님께서 무화과나무에 다가가셨을 때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아직 무화과의 열매가 익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잎사귀가 무성했기에 혹 아직 완전히 익지 않은 열매라도 있을까 하여 주님은 그것을 찾으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전혀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가 무화과나무가 실과를 낼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시자 주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보시며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하셨고 제자들이 이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매가 익을 시기가 아니기에 당연히 아무런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를 왜 저주하신 것일까요.. 난해한 이 본문의 사건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드실 열매가 없음에 대해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곧 무성한 자기들의 의로움 만을 자랑하며 실제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진정한 믿음의 아름다운 열매는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고 있던 유대주의자들과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심판을 예표하시는 상징의 의미로 이렇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서 멸망 당하게 되고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릴 그 미래의 비극을 주님은 이 같은 사건을 통해서 예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열매가 없었던 무화과나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고 있었던 타락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상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가적인 발전과 더불어 경제적인 번영과 발전과 평화 위에 외형적으로만 성장했고 비대해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복음을 비롯한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진리의 가치와 정통 교리들을 멸시했고 인본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예배를 더럽혔습니다. 주일은 무너졌고 모든 예배의 내용과 형태는 인간을 즐겁게 하는 종교적 유희로 대체되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성도들의 윤리적 도덕적 해이는 이제 세상마저도 조롱할 정도가 되었고 교회가 이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과 권력을 향해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의 책망을 받아야 할 만큼 현세기복주의에 물들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정치적인 이념으로 교회와 성도가 양분되어 참담한 분열과 첨예한 분리를 가속하고 있는 추악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0여 년 전 성전에 오르신 주님께서 진노하시며 하나님의 성전을 정화하셨다면 이제 또다시 그런 일을 이 시대의 교회에게 행하지 않으실지,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과 멀어진 시대를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한국교회는 양적으로는 괄목할 열매를 거두었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숙하고 참된 신앙의 열매는 찾아보기 어려운 성경과 멀어진 거짓된 신앙으로 전락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 앞에서 철저하게 오늘의 교회의 모습을 정직하게 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 없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한다고 말하면서 전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의 마지막은 결국 두려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라는 사실을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해서 강력하게 경고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겉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이 이성의 범주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신자라는 자의식만으로 그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있다고 볼 수 없음을 성경의 진리가 항상 강조하고 경고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위선과 종교적 형식주의의 가면을 찢어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진리를 사랑하는 신자들이 되십시오. 자기를 부둥켜안고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빈껍데기 같은 교인들이 되지 마시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회와 성경의 진리를 목숨처럼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저울에 달려서 무게가 나가지 않게 되면 우리는 모두 심판대 앞에서 버림을 당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구원,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생명 없는 신앙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행함이 없는 믿음 죽은 믿음이라고 분명히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라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히브리서는 힘주어 경고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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