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02 20:04
주님은 이어서 자신과 구약의 율법과의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유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목숨처럼 지켰던 율법에 대한 왜곡된 그들의 이해와 달리,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율법의 가치를 어떻게 여기는 것이 마땅한 지를 교훈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율법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외적인 준수에는 집중하면서도 그 율법이 요구하는 마음을 다한 순종과 진실한 사랑과 공의와 긍휼을 행하는 일은 지극히 소홀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다음과 같이 책망하신 것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이미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말을 폐하러 오신 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해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논조가 당시 바리새인들이나 율법 학자들과는 너무도 판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보편적으로 행하는 예배를 비롯한 모든 종교적인 관행들을 역사적 개혁주의와 장로교의 전통을 따라 다시 개혁하려 하면 그것이 대부분의 교회들에 의해서 매우 생경하게 여겨질 것이고 그로 인해서 거부와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듯이, 예수님의 말씀이 참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대주의에 의해서 상당히 왜곡되고 변질된 율법의 해석과 적용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상당히 파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폐하러 오신 것으로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우려하심으로 이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17~20절은 뒤이어 나오는 여섯 가지 교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예수께서는 살인, 간음, 이혼, 맹세, 보복하지 말라는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참된 의미와 그 요구를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율법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율법을 왜곡하여 오용하는 자들의 잘못된 해석과 외식적인 적용에 대한 교정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 생각지 말라고 단호히 하셨습니다. ‘생각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을 사실이라고 여기거나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율법의 파괴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시 유대주의 종교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율법의 해석과 관습의 측면에서 볼 때 주님의 행보는 이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이러한 파격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부정한다고 충분히 오해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그릇된 전통이나 관습을 하나님의 율법과 분리시키고자 하셨을 뿐입니다. ‘율법’은 신성한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지만 ‘율법주의’는 결코 하나님에게 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의와 추악한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거부하신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왜곡하거나 그 위에 덧붙인 인간의 그릇된 전통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구약 성경을 메시야로서의 자신의 사역과 결코 무관하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구약의 모든 예언과 예표와 계시가 자기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폐하러’라고 주님은 두 번이나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본래 건물을 무너뜨리거나 해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율법의 권위와 효력을 무너뜨리거나 폐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직접 밝히셨습니다. ‘완전케 하신다’는 의미는 ‘충만하게 하다’, ‘성취하다’, ‘가득 채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곧 구약의 모든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율법의 모든 요구를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순종하심으로 다 채우시겠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 성막, 제사장의 직분과 모든 의식이 예표하고 상징하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모두 완전하게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종교를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오히려 확증하고 그 약속된 모든 예언과 예표와 상징들을 모두 성취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분명히 밝히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계속해서 성경과 교리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제도와 법을 만들어 왔고 참된 전통에서 벗어난 길을 걸어왔습니다. 자유주의를 비롯한 여러 인본주의적인 타락한 신학들의 침투를 통해 교회는 참된 역사적 성경적 전통에서 이탈하여 점점 기형적인 모습으로 변모되어 왔습니다. 개혁주의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물려준 그 올바른 신앙의 유산을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좇아 무너진 것을 회복하며 변질된 모든 것을 원래로 되돌리고자 함에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교회 개혁의 정신을 따라서 인간이 만든,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모든 변질된 신앙과 신학을 거두어 내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께서 명하신 신앙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꾸 인간에게 더 편리하고 더 유익되고 더 좋은 것들을 만들어 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과 그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 그 중심이 되고자 하는 추악함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빙자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집트 인들이 그들의 우상을 추앙하는 행위를 따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어떤 벌을 받았습니다. 이 죄악에 동참한 모든 자들이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흔들리는 법궤를 손으로 붙잡은 웃사도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고,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드렸던 나답과 아비후도 하나님께서 나온 불에 삼켜져 끔찍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저주를 받을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누가 감히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임의대로 바꾼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바로 유대주의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이유이며 로마 카톨릭이 부패한 까닭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불편함과 불이익을, 우리의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에 하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 말씀에 우리를 맞추어 가야 합니다.
주께서는 모든 율법을 변질, 왜곡시킨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오셨다고, 그 모든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시며 선지자들의 모든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계명과 그 법을,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키고 순종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임의대로 무엇인가를 바꾸고 사람에게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한 모든 결정들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매우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