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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설교 한토막229 (히 4:1-5)

2023.01.11 07:20

hi 조회 수:2271

<묵상, 설교 한토막>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들이 불신하고 의심했다는 점입니다.
신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들에게 참 안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그들은 외면하고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버림을 받게 되는 이유는 참 진리이시며 참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고 이를 멸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그들이 들은 모든 복음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결국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없었던 궁극의 이유는 바로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직설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구원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많이 주었어도 그들은 그 진리로부터 자기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스스로 무산시켰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한 모든 책임이 복음을 거부한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합하다’ 라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결합하다’, ‘뒤섞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믿음과 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뒤섞여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는 이 복음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이 한 사람의 영혼에 깊이 박히게 되고 그리고 그의 지정의와 완전히 결합되고 뒤섞이게 됨으로 그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결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한 사람의 인격 속에서 완전히 결합되어 새롭게 태어나게 되는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은총이 임한 자의 영혼에 일어나는 거룩한 생명의 변화라는 것을 성경은 ‘화합되다’ 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그 복음을 듣는 자가 화합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복음과 한 사람의 영혼이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이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아무리 구원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장엄한 복음의 선포되어도 전혀 이 복음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리의 복음이 영혼 속으로 전혀 스며들지 못하여 뒤섞이지 않는 일들이 지루하게 이어지게 됩니다. 믿음이 생성되지 않은 채로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고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어떻게든 믿을 이유와 믿어지는 근거를 발견하고 찾고자 하지 않고 항상 믿을 수 없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만 언제나 그것을 변명과 핑계합니다.
이러 이러하기 때문에 도저히 믿어지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진리를 수용하고 복음을 믿고자 하는 마음 보다는 오히려 복음에 반감을 드러내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교회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철저하게 불신앙으로 일관하게 되는 전혀 그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섞이지 않는 현상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응이 영혼 가운데 지속된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기독교를 박해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 성경을 부지런히 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그러한 불손한 동기로 성경을 읽다가도 회심을 하게 된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읽고 그 복음과 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는 일이 지속되어야 어떤 결과가 결국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귀를 틀어 먹고 마음의 빗장을 더 굳게 걸어 잠그고 결국 예배당의 문을 발로 차고 나가게 되든지 아니면 마침내 진리 안에서,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생애적인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뒤섞임이 일어나게 되든지 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참된 믿음으로 인도하는 모든 진리와 교리가 전혀 영혼 가운데 영향을 미치지 못함으로, 진리의 복음이 한 영혼 안에서 믿음과 결합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끝내 예수를 믿지 못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때 결국은 그는 영원한 구원의 약속에 미치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심지어 아무리 성경과 교리에 박식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에 대한 전인적인 만남이 그의 영혼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았고 십자가를 경험한 적이 없다면, 그의 생애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통해서 전혀 복음과 결합되어 본 일이 없다면 영원한 안식의 약속에 결코 도달 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임을 우리는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바로 지식적인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복음을 이해할 뿐 가슴으로 그것을 경험한 바 없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설명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