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8 08:25
태풍이 몰아쳐 배가 물에 잠기고 있는 상황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지금 고물에서 편안히 잠을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은 아무리 지금의 상황이 급박한 위기의 순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신성을 가지신 주님께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싸인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성도가 바라보아야 할 싸인은 무엇입니까.. 임마누엘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입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잠잠할 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두려워하고 근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결연히 의지하면서 그 상황을 통제해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같이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이 배에 타고 계시는 한 절대로 이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굳게 붙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아직 겨자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그들은 불안했고 두려웠고 급기야 주님을 깨우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편안하게 잠을 주무신 또 다른 이유는 그 모든 일을 역사하고 계시는 분이 지금 배 안에서 곤히 주무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갈리리 호수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엄청난 자연의 위력을 연출하고 감독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셨기에 그분은 전혀 이에 동요하지 않으시고 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온 천지가 개벽을 해도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일이라면 우리는 그 일로 인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 일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이 세상을 보십시오. 광풍으로 인해 순식간에 뒤집어 질지 모르는 배처럼 위태롭지 않습니까.. 눈앞에 일어나는 이 종말론적인 모든 사악한 현상들 앞에 두려워하고 염려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이제 우리는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우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 야심한 밤에 하필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이 시점에 이 두려운 태풍이 일었는지를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몫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상황과 전혀 무관하신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을 믿는 성도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한 걸음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그 이유, 바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우리의 믿음을 달아 보시기 위함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큰 광풍이 일어남과 그리고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오는 이 위기의 상황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찾아온 공포에 질려 버렸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돌발적인 위기의 상황들은 우리의 마음을 급격히 믿음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과 위기 앞에서 믿음으로 반응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일단 당면한 고난의 크기, 고통의 무게에 마음이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갈수록 다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에만 몰입되어 절망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 태풍을 우리에게 몰아오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배가 잠기기 직전의 이 위기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성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고 있는 자가 있었다면 배 위의 상황은 이처럼 최악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이 단순한 지식과 관념 안에만 머무를 때 고난과 위기 앞에서 얼마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지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서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 중에서 지금 고난이라는 이름의 태풍을 만난 여러분, 부디 그리스도께 집중하십시오. 그 태풍을 불어오신 이가 그분이십니다. 당신을 뒤흔들고 계신 분은 다른 이가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태풍 속에서 조용히 주무시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내게는 지금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고요히 잠잠히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주님께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어야 합니다. ‘주님 이 폭풍을 저에게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당신께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 저는 태풍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을 저에게 보내셔서 저에게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하기를 원하시는데 제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까 봐 그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부디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보이시고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기적의 현장에 그들은 그것을 목격한 증인이었고 다른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하늘나라의 비밀을 그 비유의 말씀을 그토록 주님께 상세하게 들었어도 그들에게는 아직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 태풍 속에서도 고요할 수 있는 믿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 주님만을 의지하며 잠잠할 수 있는 믿음이 아직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풍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 태풍 속에서도 여전히 쪽배처럼 흔들리고 있는 나의 믿음 없음이 두려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이 개혁신앙의 이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분의 믿음이 안전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태풍이 일어나 보면 우리의 믿음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핍박의 태풍이 우리를 발가벗기게 될 날이 올 때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 두려운 날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이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태산 같은 환난과 핍박이 도래할 때는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신앙은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믿음이 과연 그날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언제나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교만해질 수 있고 나태함에 빠져들 수 있는 우리들에게 태풍을 몰고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신앙의 모습을, 그 믿음 없음을,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이것이 정직한 나의 믿음의 점수임을 확인시키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시험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드러내 그들이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않을 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쉬 무너져 버리고 배에 찬 물보다 더 많은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에 채워지게 되는지를 주님은 그들이 그것을 발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날 밤의 갈릴리 호수의 태풍은 바로 이 같은 주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인 우리를 생각지 못한 두려움 가운데로 이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나를 큰 물고기의 뱃속으로 이끄셨듯이 천지가 개벽을 하는 혼란과 혼돈의 한복판으로, 깊은 절망 속으로 우리를 충분히 이끌어 가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버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벌하시기 위함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의 고난과 괴로움을 하나님께서 즐기고자 하심은 더욱더 아닙니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의 믿음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쉬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그 약속을 잊어버리는 존재인지를 철저하게 발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배의 고물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이 태풍이 아무것도 아니로구나 이 풍랑이 우리를 결코 해할 수 없다’라고 여길 수 있을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시험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