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9 08:26
소녀가 곧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일어난 것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명령하시자 죽은 적이 없었던 원래 살아 있었던 아이처럼 열두 살의 그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소녀가 깨어나 걸어 다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회복되어져 가는 것이 아닙니다. 즉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단번에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완전하게 살아났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나서 하루가 지나서 일어나게 되었고 또 하루가 지나서 걷기 시작하고 일주일이 지나서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즉시 살아났고 즉시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이 소녀의 부활은 완전했습니다.
완전한 회복, 영원히 단번에 완전히 우리를 속죄하사 우리를 단번에 새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칭의와 구원은 단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행형이 아닙니다. 구원 이후에 성화는 진행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루어진 이신칭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 된 양자됨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심으로 단번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위나 구원 이후의 우리의 삶이나 공로와 무관한 것입니다. 즉시 완전하게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단번에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영원히 뒤바뀌지 않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한 구원의 은혜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소녀를 살리시고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사람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행하신 이후에 여러 차례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셨습니다.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일은 결코 감추어지거나 알려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순식간에 모든 메인 뉴스를 장식하고 SNS를 뜨겁게 달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일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메시야로의 사역이 왜곡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야이로의 딸이 살아난 것은 모든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들이 복음을 통해 중생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예표가 되는 사건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 본질이 아니라 영원한 절망 속에서 지옥의 영벌에 떨어질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이 목적인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구원보다 지금 이 땅에서 죽을 병이 낫는 것,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 우리가 이 땅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만이 중요할 따름이기에 주님은 메시야갸 오신 목적이 이렇게 왜곡되도록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리스도를 찾는 목적이 이같이 육적인 것에 치우쳐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아직은 주님께서 이렇게 많은 자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 부활하심으로 이 위대한 복음을 완성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된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이 주님의 메시야로서의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의 대속의 사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이 가장 중요한 사명을 방해 없이 집중하며 이것을 온전하게 감당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주님께서는 이 모든 기적과 이적의 현장에서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알려지고 높아지는 것을 즐기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뜻은 그런 것에 있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이 땅에서 다 누리기 위해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영광은 이 모든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신 이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누리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신자가 받을 영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가 아니라 하늘에서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도 주님께서 걸어가신 그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구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며 나를 쳐서 복종시키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주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이 땅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절망을 전해온 지 그리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절망과 슬픔은 환희와 기쁨의 감격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이적을 통해서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던 야이로의 집은 잔칫집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지옥의 영벌이 예비된 소망 없는 초상집 같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심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과 영생의 기쁨과 감격과 소망을 허락해 주신 구주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그렇게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리를 구원할 자이심을 복음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이토록 무감각하고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것일까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게 된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되었는데 이보다 더 기쁘고 감격적인 일이 있을 수 없는데도 여전히 우리의 모습은 기쁘고 감격스러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복은 죽음 그 너머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아직 구원과 영생의 기쁨과 그 감격을 피부적으로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가 영생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는 소식보다는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롭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에 여전히 우리의 관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임한 이 구원과 죽음 이후 영원한 삶으로의 부활의 은총이 얼마나 위대하며 우리가 이 가치를 결코 가볍게 여기기 원치 않으시기에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평안과 안식으로만 가득하도록 결코 만들지 않으십니다.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모두가 우리의 인생 속에 찾아오도록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마치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자처럼 스스로를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수 없는 곳이라고 확신하게 하기 위해 돌아갈 본향을 그리워할 일들을 우리의 삶 속에서 섭리해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독수리가 그 견고했던 둥지를 스스로 헐어 버리고 새끼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몰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을 때로 지극히 불안정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땅에 대한 모든 미련과 집착에서 우리가 점점 멀어지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관심을 돌아갈 본향을 향하도록 하시는 일들을 행하십니다.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실패와 좌절, 육체의 질병과 사랑하는 자들을 결국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겪게 하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영원히 머물 곳은 이 세상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 예비한 영원한 나라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성경의 복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하시는지를 깊이 생각하십시오. 세상은 잠시 우리가 머무는 불완전한 곳일 뿐입니다. 인생은 속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인생 속에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해 보십시오. 영원한 나라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속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삶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지치게 하며 사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희망이 사라지게 만들 때 신자는 그것을 한탄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에 더욱 분명하게 자리 잡게 하시는 것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돌아갈 내 본향에 대한 소망이라는 것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왜 우리의 육신은 나이가 들수록 여기저기 고장이 나도록 만들어졌을까요.. 그토록 곱고 아름답던 여러분의 모습도 세월 속에 왜 모두 후패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돌아갈 영원한 나라를 생각하며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을 잘 정리하고 모든 육에 속한 미련들을 하나하나 내려놓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두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한번 태어나 두 번 죽게 될 자들입니다. 이 사실이 진정으로 감사하고 감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 위대한 구원과 영생에 대한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아직 세상과 우리의 육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이 참된 소망과 기쁨을 여러분의 영혼에 담으십시오. 그리고 이 구원으로 인한 참 기쁨이 여러분 안에 벅차오르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안에 행하신 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참 기쁨과 감사를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에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잠깐의 행복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그보다 비교도 되지 않는 영원한 삶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인자하시고 선하심을 우리에게 맛보게 하시기 위한 예고편들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받게 될 복, 영원히 우리가 누리게 될 그 기쁨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슬픈 일이 찾아와도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가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주신 이 영원한 약속, 우리의 너무도 분명한 찬란히 빛나는 미래를 소망하면서 기쁨으로 넉넉히 우리의 인생의 모든 날들을 믿음으로 감당하며 그렇게 살아가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그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삶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오늘도 하나님께서 더욱 친밀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더욱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믿음과 용기와 힘을 더해 주시기를 다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