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7 08:18
하나님의 말씀보다 장로의 유전을 더 신봉하는 어리석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주께서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만큼 이제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을 신앙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는 그냥 귀로 듣기만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를 기울여 듣고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마음으로 깊이 깨달아야 만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참된 구원과 믿음에 관해서 얼마나 무지하였었는지를 발견해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진리의 그 올바른 의미를 깨닫지 못하게 되면 수없이 들은 말씀은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신앙과 삶은 진리와 동떨어진 채로 종교적인 관성에만 의존한 메마른 형식적인 빈껍데기 같은 신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었어도 그 말씀이 나를 진리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참된 신앙 앞으로 데리고 간 것이 아니라면, 내 영혼의 귀와 눈과 마음이 닫혀 있어서 바른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우리의 신앙도 유대주의자들처럼 하나님과 무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토록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알고 있고 잘 믿고 있고 자신들 만이 선민으로서 완전히 선하고 의롭다고 여겼어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신앙을 추호도 인정하시지 않았으니 신앙이 참된 진리와 그 진리를 통해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이 될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교훈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들로 사람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먹고 마시는 음식들을 뜻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지금 제자들의 위생의 문제를 가지고 그들이 손을 깨끗하게 씻지 않고, 즉 장로의 유전의 그 엄격한 규례들을 전혀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빵을 먹은 것에 관해서 트집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음식이 부정한 손에 닿을 때 그 사람까지 부정해지게 된다고 여겼던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에 대해서 주님은 이러한 말씀으로 그들의 논리를 부정하신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매우 정결하며 거룩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기에 자기 자신들은 매우 순결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깨끗한 자신들은 외적으로 부정하게 될 수 있는 요소들만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정결의 규례들을 잘 지키기만 하면 자신들의 정결함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하다고 믿는 인본주의적인 관점과 인간은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라고 믿는 신본주의적 관점은 이렇게 하나님을 신앙할 때에 분명하게 그것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유대주의를 인본주의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자기 자신들에 관해서 매우 정결하고 깨끗하며 흠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을 더럽힐 수 있는 외적인 요소들만 주의하면 자신들의 깨끗함은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대단히 뛰어난 존재로 스스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무수한 실패를 통해서 결국 궁극의 답을 찾아 나아갈 수 있고 그것으로 점점 발전과 진보를 이룩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바로 반기독교적인 인본주의 사상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금 이 세상을 얼마나 더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습니까.. 온통 하나님의 법과 진리의 가치를 모두 훼손한 채로 점점 더 멸망을 향해 치닫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 이들의 생각과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시면서 부정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결코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부정한 요소는 밖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사람의 안에 있으며 그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유대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사상과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밖에서 들어가는 것과 사람의 안에서 나오는 것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입으로 들어가는 부정한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 반대를 말씀하셨습니다.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사람을 부정하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안’ 이란 바로 마음을 뜻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모든 죄악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 기록된 바리새인의 기도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외형적인 것으로 그들의 의와 선을 자랑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그들의 모든 외형적인 율법적 행위를 준수함을 통해서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율법보다 더 많은 장로의 유전을 지키고 있는 자기 자신들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밖이 깨끗하면 당연히 속도 깨끗하다고 그들은 여겼고 그렇게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외적인 형식적인 규범의 준수만을 그들은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열심히 회당에 가고 열심히 금식을 하고 큰 소리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열심히 십일조를 드리고 모든 율법과 규례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그들의 의를 삼았습니다. 그들의 의의 근거는 언제나 자기들의 행위였기에 언제나 행위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 구원론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주의의 신앙을 좇는 자들이 아닙니다. 어떤 형태와 형식, 원칙만을 중시하고 정작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잊을 길이 없는 감사와 그리고 참된 믿음이 없다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면, 돌아갈 본향에 대한 날마다 더 큰 확신과 소망으로 우리의 영혼이 채워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제도와 법과 규칙들이 다 소용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한 신자가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를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회심을 하지 않은 중생하지 않은 자가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열심히 충성을 하고 열심히 봉사를 하고 열심히 전도를 하고 열심히 헌금을 하고 열심히 성경과 교리를 지식적으로만 습득하여 그것으로 자기의 의와 자기 자랑으로 삼아 살아왔다면 그는 과연 구원에 이를 수 있을까요..? 성경은 결코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의 확신과 소망으로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소망 기쁨이 있으며 누구에게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무장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신앙의 본질입니다. 규칙, 형식, 원칙과 같은 외적인 것 만을 중요시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으로 자기의 의를 삼으며 이러한 기준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경멸하는 것은 주께서 말씀하시는 그 신앙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는, 참된 회심과 중생에 대해서는 더 깊고 진지한 관심과 열정이 없으면서 언제나 바른 것 만을, 정의와 법 만을 외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은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전혀 정의롭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온갖 죄를 저지른 자들이 정의와 공법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코미디 같은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온갖 죄악을 저지르고 부패와 부정을 행하며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준법과 평등을 논하는 것만 추악한 모순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의 이중성입니다. 정말 고매한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모든 삶으로 그것을 좇아가면서 원칙을 이야기한다면, 물론 그것으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에서만큼 그런 자들이 높임과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그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과 영혼으로부터 온갖 부패하고 썩은 것들이 흘러나오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겉은 온갖 깨끗한 척하지만 그 속에서 썩은 부패한 악취를 풍기는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차고 넘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