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30 21:18
유대주의자들의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은 행위 구원에 매달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는 오직 자신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주의자들이 만들어 낸 허황된 장로의 유전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규례들을 공격하시면서 그런 것으로 결코 너희는 정결케 될 수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음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바는 마음이 없는 모든 종교적 열심이나 행위들입니다. 이것은 정말 위험하고 악한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의 행위 구원, 행위 종교의 그 끔찍한 그릇된 신앙의 요소는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매우 그릇된 신앙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돌아보십시오. 우리의 모든 주를 향한 충성과 헌신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받은 그 대속하신 은혜에 대한 형언할 길이 없는 감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모든 행위는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행위라야 숭고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옥합을 깬 여인을 보십시오 주께서 기뻐하신 것은 그녀가 드린 향유입니까.. 그녀의 행위였습니까.. 그리스도를 향해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었습니까.. 사랑이 담기지 않은 감사와 순종의 마음이 없는 그 어떤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우리 자신의 믿음을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나의 믿음의 그 근원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구약적 율법주의의 잔재는 결코 구원과 무관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 안에 이러한 요소가 있다면 그는 결코 구원과 무관한 그릇된 신앙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모든 종교행위는 가증한 것입니다. 사랑은 격렬하고 열렬한 행위를 동반합니다. 마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사랑의 대상을 향한 열렬한 행위를, 더 나아가 희생을 동반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전혀 사랑하는 마음은 없으면서 행위만으로 의무를 다하려 한다면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것을 사랑으로 여길까요.. 모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형식과 행위를 따라 행할 뿐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 것인지를 깊이 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나는 매일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으로 드리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구약은 행위와 율법을 강조하지만 신약은 진실한 마음과 은혜를 강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새 마음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새 마음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바로 회심을 통해 중생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집니다.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자신과 물질만을 숭배하던 악한 마음이 성령을 통해서 온전히 변화될 때 우리는 옛사람의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을 벗어 버리고 새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나의 삶에서 내가 중심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과 영혼이 변화될 때 우리에게서 고백 되어지는 것이 바로 빌립보서 1장 20~21절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중생을 통해서 거듭난 그 새마음에 담겨진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입니다. 빌립보서 2장 1~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오직 거듭난 영혼, 회심한 마음으로만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율법을 좇는 삶, 행위에 집착하는 위선적이고 자기 의를 드러내는 교만한 마음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에 필요한 마음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를 닮아 겸비한 마음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신앙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부정한 것, 외적인, 형식적인 부정한 것을 정죄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한없이 옳다고 깨끗하다고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행위를 보며 원칙을 제도를 법을 지키는지를 감시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믿음의 모습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타인이 아니라 내 마음의 정결함과 겸비함을,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며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죄를 미워함을 지켜 나아가고 있는지를 매일매일 성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 얻은 믿음이 우리의 밖으로 표출된 겸손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참으로 죄악이 창궐한 시대의 한복판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른 믿음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에 너무도 최악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의 시대와 상황, 환경에서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신앙의 조상들도 그들의 시대를 말세라 여겼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도 박해와 핍박이 있었던 최악의 상황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도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며 신앙의 순결을 고백을 지키기 위해 일사의 각오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겼다면 지금 우리는 이 죄악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순결한 믿음을 지킬 것인가.. 어떻게 이 바른 신학과 신앙을 지켜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이제 우리도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더럽다고 악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지식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의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주의하고 경계하십시오. 무엇보다 당신의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힘쓰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마음을 가지고, 그 겸비함으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면서 참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더욱 붙들리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의 행위에 우리가 자랑하는 그 어떤 것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주신 새 마음을 잘 유지하며 거룩과 순결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자 함에 우리의 모든 신앙의 목표가 고정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십시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고정하십시오. 주께서 오늘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해 주셔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서 이 땅에서의 모든 연단과 시험을 잘 감당하며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화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게서 존귀케 되어지도록 우리 모두가 그 삶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다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