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7 23:53
예수님께서는 지금 제자들과 함께 데가볼리에 계셨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복음을 전파하신 적이 없으셨기에 주께서 이곳으로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자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보기 위해서 연일 몰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인파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었던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많은 수의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는데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른지는 사흘째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먹을 것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이 모인 무리들에게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을 하셨습니다. 주님을 좇기만 했을 따름이지 자신들의 먹을 것에 대해서는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미 사흘이나 지나 그들이 가져온 양식들이 모두 다 동이 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목자를 좇는 양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양들에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언제나 양들이 뜯을 풀과 마실 시냇물을 알아보는 것은 목자의 책임입니다. 아무도 자신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할지 걱정하지 않고 있었어도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주님께서는 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이 문제를 염려하고 계셨습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의 멸망을 향해서 정신없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영혼에 대해서 아무도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않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에 관해 의논하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는 길을, 영생을 얻게 하는 길을, 그들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하늘의 식량과 음료를 제공하실 일을 친히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이 많은 무리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이 한 마디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불쌍히 여기노라의 정확한 의미는 ‘내가 불쌍히 여긴다’라는 뜻으로 자비를 베풀다, 동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내장, 몸속의 장기, 즉 유대인들이 감정의 좌소라고 여겼던 심장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심장이 타 들어가고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심히 긍휼히 여기고 애끓는 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도 사용된 이 동사는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재물과 시간과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던 그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설명하는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겠다는 애타는 간절한 마음을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이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죄를 지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것은 우리들인데 그것에 대해서 이토록 마음 아파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백성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이 같은 애끓는 마음,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결코 알 리가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결코 알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셨습니다. 오늘도 이 수고와 슬픔뿐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지극히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우리의 체질과 성정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같이 인성을 가지신 분이기에 먹지 못하면 배가 고프고 물을 마시지 못하면 목이 마르며 자지 못하면 피곤하며 추위와 더위의 힘겨움을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의 처지를, 우리의 모든 힘겨워하는 것을, 우리의 모든 연약과 두려움과 그 한계와, 우리의 궁핍과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모두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알고 계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애끓는 긍휼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들에 대해서 깊이 동정하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마음이 주님께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 가운데서 사망을 향해서 영원한 멸망의 지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죄인들을 향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해 가지고 계신 그 구령의 마음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시야에 들어온 영혼들은 하나같이 헐벗고 굶주리며 병들었고 귀신들려 고통 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모든 고통을 안고 끝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밀려들고 또 밀려들고 있었던 그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바로 그들 모두를 심히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이셨다는 것을 마가복음은 다시 한번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죄 가운데서 무지와 어두움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한없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그들을 고치고 치유하시는 일을 행하시면서 제대로 주무시지도 먹지도 쉬지도 못하는 삶을 감당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든 어리석은 신들 가운데 어떤 신이 인간을 이렇게 불쌍히 여기는 신이 또 있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맹목적으로 인간들에게 바치기 만을 바라는 거짓된 우상들일 뿐입니다. 오직 우리의 구주만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만이 죄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 백성들을 한없이 애끓는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 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오늘도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인생을 지나가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 진리의 좁은 문,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향해 애끓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이토록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나 같은 자를 사랑해 주심을 우리가 깊이 경험하고 깨닫게 될 때 우리 또한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불쌍히 여기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힘겹게 믿음을 지키며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지체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게 됨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덮어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께서 부디 우리에게 이 마음을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