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7 08:01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교훈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빵이 없음에 대해서 의논하시는 것을 보시고 강하게 그들을 책망하고 계셨습니다. 오직 빵에 대해서만 그들의 생각이 몰두하고 있는 이 같은 어리석음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매우 강경하게 제자들에게 질책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왜 현세 기복적인 신앙에 대해서 그토록 경계해야 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같은 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십시오.
이례적으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더욱 강도 높게 책망하신 것을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9절에서는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만 기록하고 있음에 비해 마가복음에서는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며 너희 마음이 둔하냐라고 기록함으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무지함과 마음이 둔하여짐까지 책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며’라는 의미는 이해력의 부족을 의미하고 ‘깨닫지 못하느냐’는 통찰력의 부족을, 마음이 둔하냐라는 말씀은 진리를 향한 그들의 마음의 지정의의 활동이 너무도 박약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강도 높게 그들을 책망하신 것은 이 곳이 유일합니다. 이렇게까지 조목조목 제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주께서는 매우 엄하게 질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영혼과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의 관점은 항상 현세적이고 물질적이며 자기들의 필요에만 민감하고 이에 집중되어 있는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믿음이 일천하고 아직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임을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모습은 계속 용인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제자들을 강하게 꾸짖으시며 그들의 관점이 부디 주께서 말씀하시는 영적인 것을 바라보고 깨닫게 될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한 상태로 결코 만족하고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런 상태라면 우리는 결코 영원한 나라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한 채 어린아이 같은 믿음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도무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꾸중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영적으로 장님이며 귀머거리였고 도무지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아둔한 자들이었습니다. 눈이 있어도 진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소경이며 귀가 있어도 복음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귀 거머리일 뿐입니다. 우리의 눈은 진리를 끊임없이 보고 깨달으며 우리의 귀는 언제나 주의 말씀을 잘 이해하여 그것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교훈을 들으며 깨닫고 그것을 언제나 기억하여 지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영적으로 잠들어 있거나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꾸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의 기억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몇 바구니가 남았으며 또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그 남은 조각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물으셨고 제자들은 이에 각각 열둘과 일곱이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왜 이것을 물어보셨습니까.. 결국 어리석고 아둔한 자들에게는 그 기억을 더듬어 깨닫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신 것은 정말 그들이 그토록 어리석기 때문이었습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들의 결과를 다시 질문하고 답을 하게 하시는 방법으로 주님은 그들이 부디 깨닫기를 바라셨습니다.
그 같은 능력을 행하신 주님 자신이 지금 제자들과 함께 있는데 빵 한 개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는 이 한심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러한 질문으로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지혜가 없으며 아둔한 지를 확인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가 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그 모든 가르치심과 제자들의 깨닫지 못하는 그 무지하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아무리 참된 복음의 의미를 드러내도 우리의 마음과 관심과 생각은 언제나 이 세상의 물질과 우리의 필요에 고정되어 있기 마련인 이것이 바로 죄인들의 한계이며 전적 무지의 증거입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위대한 가치를 설명하고 가르쳐도 언제나 눈앞에 보이는 가치에만 집중하고 몰입하려는 어리석음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